우리는 보통 삶의 단계를 구분(區分:일정한 기준에 따라 갈라 나눔 )할 때 유년기(幼年期:0~20), 성년기(成年期:20~60), 노년기(老年期60세 이상)로 생각해 왔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인생의 단계 기준을 간단하게 보더라도, 노년기는 인생에서 결코 짧지 않은 구간(區間)이다. 특히 오늘날과 같은 예전에 없었던 100세 시대에는 노년기도 이제는 60대는 젊은 노인, 70대는 노인, 80대는 고령노인, 그리고 90대 이상은 초 고령노인으로 세분화(細分化)해야 할 것 같다. 사실 오늘날 백세시대이긴 하지만, 백세 이상은 아직도 흔치는 않은 드문 경우인데, 2024년 기준 우리나라의 평균 수명은 남자가 대략 86세이고 여자는 그보다 4년 더 많은 90세라고 한다. 그렇다고 쳐도 대략 30여 년이라는 결코 짧지 않은 노년기의 삶을 살아야 한다. 이런 현실을 감안할 때 노년기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머지않아 자신에게 닥칠 중⸳장년(壯年)들도 결코 남의 일만이 아닌 자신의 노년에 대한 철두철미(徹頭徹尾: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함)하고 주도면밀(周到綿密:꼼꼼함, 빈틈없음)한 사전 설계와 준비가 필요한 것이다.
러시아 사상가, 소설가 레프 톨스토이는 “나이가 젊고 생각이 짧을수록 ‘물질적이고 육체적인 삶’이 최고라고 여기며, 나이가 들고 지혜가 자랄수록 ‘정신적인 삶’을 최고로 여긴다.”라고 말했다. ‘젊은이는 늙고, 늙은이는 죽는다.’는 故이어령 교수님의 생전(生前) 말씀이다. 젊을 때는 잊고, 자신에게는 오지 않을 것 같아 생각지도 않지만, ‘늙음에 대한 준비를 해야 하는 시기는 누구에게나 오는 법’이다. 서울대 김난도 교수가 쓴 책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에서 ‘평안[平安:걱정이나 탈이 없음, 평강(平康)]하니까 노년이다’라는 말이 번뜩 뇌리(腦裏)를 스친다. 생각해보니 부모님에게서 물려받은 것 없는 흑 수저(↔금 수저)로 생활전선에서 나름대로 성공하여 살림기반도 닦고, 자식들 가르쳐 여우살이(주로 딸자식 결혼의 옛말)까지 다 시켜, 각자 제 역할하고 살아가고 있으니 노년에 무엇을 걱정하고 아쉬운 것이 있겠는가? 지금 노년이 일평생에서 가장 편안하고 행복하니 그 누구를 부러워한단 말인가?
그렇다면 지혜롭게 나이 들기 위한 지적여정(知的領域:외부의 대상이나 자극을 수용하여 개념화하는 능력을 총칭하는 인간 행동의 한 측면)은 무엇들이 있는가? 첫째, 삶이라는 모험의 동반자인 친구와의 우정은 누구와 어떻게 나눌 것인가? 둘째, 주름살이 매력적일 수는 없다. 자신의 몸을 돌본다는 것. 나이 들어가는 몸을 어떻게 대하고 가꿀 것인가? 셋째, 지난날을 돌이켜보며 과거를 통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미래를 후회대신 어떻게 만족한 삶을 살아갈 것인가? “노년기로서 발달과업은 자아통합감(과거의 삶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의미를 부여하며 남은 시간을 희망으로 채우는데서 비롯됨.)과 절망감의 위기를 극복하는 것(‘봄은 한번뿐이 아닌 계절이며 삶의 어느 순간이든 꽃은 다시 필 수 있다.’라는 생각)이다.” 미국의 심리학자 E. 에릭슨의 말이다. 넷째, 통제권을 상실할 준비와 유산분배와 상속, 그리고 돌봄 비용을 어떻게 마련하고 지불할 것인가? 현실적으로 노년에는 경제력, 돈이 ‘자존심이고 인격이며, 무엇보다도 생명, 목숨 줄’이다. 젊은 날 근검절약, ‘저축은 필수(必須:꼭 필요함)이자 필연(必然:다른 도리가 없음)’이다. 다섯째, 노년이 되어도 사랑은 어떻게 나눌 것인가? 여섯째, 인간의 역량이라는 관점에서 본 불평등과 경제적인 면들은 어떻게 대처(對處)하고 해결할 것인가? 일곱째, 나눔의 역설과 나름의 해결책으로 무엇을 남길 것인가? 여덟째, 중병(重病;목숨을 잃을 정도 위중한 병)이 들었을 때 어느 선(線:접하는 두 개 면의 경계)까지 의료도움, 특히 기계적 도움을 받을 것인가? 아홉째, 나잇대 별로 신변정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어떻게 죽음을 준비하고 맞이할 것인가? 이 모든 것들,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런데 여기 현실적으로 이들 못지않게 중요한 것들이 있다. 바로 어디에서 살 것인가? 도시에서 살 것인가, 시골(전원)에서 살 것인가? 다음으로 누구와 살 것인가? 가족과 살 것인가, 혼자 살 것인가? 가족과 산다면, 매우 이례적(異例的:특이한) 경우이지만 부모? 자식? 아니면 배우자? 등이다. 그런데 대부분은 배우자와 함께 아니면, 혼자 살기일 것이다.
특히 배우자와 단둘이 사는 경우 노년이 축복이나 재앙이 될 수도, 극명(克明)하게 말해 천국과, 지옥을 심지어는 구천(九泉)을 헤맬 수도 있는 것이다.
부부라는 관계는 일평생을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다름을 존중하고 조화를 이루어 가는 과정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결혼 전부터 자신의 부모님을 통해 부부간의 상호작용 방식과 역할에 대해 일정한 상(相)을 형성하게 된다. 서로의 부부의 상이 비슷하거나 같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충돌이 시시 때때로 일어날 수 있다. 심하면 사는 내내 계속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사람이란 쉽사리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혼 전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생활 방식이 다른 경우나 특히 가치관이 다른 경우 서로 간 자신이 변화해 상대에게 맞추려 하기보다는 오히려 상대를 변화시키려 한다면 부부관계 형성에 어려움이 많아 수시로 부딪힐 수 있다. 부부는 일심동체(一心同體:한 마음, 한 몸, 서로 굳게 결합함.)라 하지만 부부는 똑같아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다른 점들을 조화시켜 개인으로, 그리고 부부로 발전해 나가는 것이다. 일치(一致:서로 어긋나지 않고 딱 맞음.)와는 달리 조화(造化)는 서로 간의 차이를 인정하고 수용하는데서부터 출발하는 것이라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한 사람의 다른 시각으로 본 오복(?)은 부모 복, 형제 복, 배우자 복, 자식 복, 그리고 인복(인덕)이다. 이 가운데 기본은 부모 복이고, 성공하려면 인복이며, 노년까지 편안한 삶, 행복한 삶을 영위하려면 배우자 복이 있어야 한다. 거기다가 인생 말년 자식 복까지 있다면, 그야말로 ‘축복’받은 사람일 것이다.
인간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가? 바로 행복이 아닌가? 그러므로 오복 중 으뜸은 바로 배우자 복, 배우자 잘 만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부부란 어떤 관계인가? 서로 같은 방향을 향해 손을 맞잡고 발맞춰 걸어가는 관계이고, 잘 차려진 밥상을 둘이 들고 편안하고 조용한 곳에 가서 다정스럽게 대화를 나누면서 서로 먹어보라고 권(勸:권할 권)하면서 맛있게 먹는 관계이며, 또한 보자기 네 면을 각자 양손으로 잡고 금은보화를 가득 담는 형국(形局:어떤 일이 벌어지는 형편이나 국면)이다. 한마디로 부부란 서로 부족한 것을 채워주는 보완(補完)관계이며, 함께 보조를 맞추어 살아가야 하는 동반자의 관계이다. 그것은 결혼한 날부터 생애 마지막 날까지 그리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평생을 서로 상대를 존중하고 인정해 주어야 하며, 또한 감사해야 하며, 공(功)이 있으면 그 공도 상대에게 돌려줄 수 있는 관계여야만 한다.
결혼은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사람이 살아가면서 가장 큰 일)이다. 혼인(婚姻), 결혼은 예전부터 천합(天合), 천지일합(天地一合)이라는 것으로 즉, ‘하늘과 땅의 결합처럼 성(聖)스럽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결혼이란 ‘서로가 가진 모든 것을 함께 나누겠다.’는 의미로 해석되며, 부부가 서로에게 희생을 강요하기보다는 ‘서로 함께 공유하는 관계가 되어야만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런 결혼이 요즘은 백년해로(百年偕老)하기도 어려운 세상인 것 같다. 결혼이 극한 상황이 되어 결국 파국(破局)으로 끝이 나는 이혼의 사이에는 별거(別居), 휴 혼(休婚), 해 혼(解婚), 그리고 이혼의 대안(代案)인 졸 혼(卒婚)이 있다. 각각의 구체적 정의로, 별거는 부부가 ‘이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따로 사는 상황’을 의미하는 것으로 주로 부부간의 갈등, 직장문제, 자녀교육 등 다양한 이유로 발생하며 이혼으로 이어질 수도 있고 재결합할 수도 있으며, 휴 혼은 6개월~1년 정도 기간을 정해놓고 부부가 각자 떨어 지내며 ‘결혼생활을 쉬어간다’는 의미이고, 해 혼은 ‘부부관계를 더 이상 하지 않는다.’거나 부부간 합의나 재판에 의하여 ‘혼인관계를 인위적(人爲的)으로 소멸(消滅) 시키는 것’인데, 이는 결혼에 실패했다는 어감(語感)을 지닌 이혼의 대체어로 사용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가장 많이 회자(膾炙: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림)되어 지고 있는 결혼과 이혼사이의 그나마 이상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졸 혼은 어떤 형태인가? 졸 혼이란 ‘혼인관계를 졸업하다’라는 의미로, 이혼은 하지 않고 법적으로는 부부관계를 유지하면서 주거공간이 다르고, 각자의 생활과 취미 등 서로 사생활을 간섭하거나 침해(侵害)하지는 않지만, 가족들의 행사 등에서는 만나기도 하는 형태이다. 지금까지의 결혼의 서약으로 ‘검은 머리 파뿌리가 될 때까지’ ‘죽음이 두 사람을 갈라놓을 때까지’라는 말은, 이제 ‘가능한 한’, ‘되도록이면’이라는 말로 바뀌어야 할 듯싶다. 부부, 두 사람을 묶고 있던 해로(偕老)의 환상이나 애정은 사막의 바위처럼 풍화(風化)되어 가고 있고, 멀쩡했던 부부들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이런저런 이유로 불화(不和)가 심해 더 이상은 정상적인 부부, 가정생활이 불가능한 경우가 되어 황혼이혼이 늘어가고 있는 현실은 흔들리지 않고 삶의 중심을 잡고 살며, 무엇보다도 자식들 상처 주지 않는 졸 혼의 새로운 트랜드(trend:추세)는 시의적절(時宜適切) 한 것도 같다.
대체로 남자는 젊어서는 불같은 성정(性情)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유(柔:부드럽고 순한)해지지만, 여자는 참(성질이나 행동이 꼼꼼하고 차분하며 얌전한)했던 성격이 점점 강성(强性:전투적 성격)으로 변하는 것이 일반적이어서 노년의 금슬(琴瑟;금실의 본딧말)은 아내가 이해심 많고 덕(德:어진)이 후(厚:두터운)하면 순탄(順坦:탈 없이 순조로움)하여 해로(偕老:함께 살며 함께 늙음)하는데 문제가 없지만, 그렇지 않으면 남자가 무한대의 인내심을 발휘하고 평소 가장 낮은 자세로 굽히지 않는다면 반드시 문제가 생기게 되어 있다. 둘이 있어 ‘고통’보다는 홀로의 ‘고독’이 훨씬 나은 법이다. 그러므로 이런 상황 하에서는 남자는 졸 혼을 선언하고 뛰쳐나오는 것이 상책(上策)이다. 사실 노년에는 부부가 금슬이 좋다면, 최고의 행복이다. 노년의 행복, 거창(巨創:매우 크고 넓은)한 것 아니다. 함께 정담(情談:다정한 이야기) 나누고, 함께 맛있는 것 먹고, 함께 좋은 구경 다니는 것, 한 마디로 소소(小小)한 일상(日常)에 진정한 행복이 담겨 있는 것이다. “진실하게 맺어진 노년의 ‘금슬 좋은 부부’는 젊음의 상실(喪失)이 불행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같이 늙어가는 즐거움이 나이 먹는 괴로움을 잊게 해 주기 때문이다.” 프랑스 작가 앙드레 모로아의 말이다.
끝으로 인터넷에 떠돌고 있는 ‘부부의 진가(眞價:참된 값어치)’라는 글을 인용하는 것으로 마무리하려 한다. “부부의 진가는 ‘노년’에 나타난다. 부대끼며 살아온 날들이 다 값진 삶이었음을, 의심의 여지없이 진정 ‘내 사랑’이었음을 절실히 느낀다. 진정한 사랑은 ‘고락(苦樂)’을 함께하는 책임 있는 마음이고, 가치 있는 삶은 오직 한 사람만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렇다. 처음 만나 사랑을 나누던 시절은 ‘보고 싶어 죽을 것 같은 나날들’이었고,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만나기에 앞서 설레는 마음 감출 수 없었고, 헤어져 돌아와 혼자 있으면 온통 방안은 ‘그리움’으로 가득 차 있지 않았던가! 가수 故김광석이 불렀던 ‘어느 60대 노(老) 부부의 이야기’의 노랫말, 가사를 읊조리며 동시에, 지난날의 아름다웠던 삶의 추억들을 회상하며 이 글의 대미(大尾)를 장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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