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박사의 생활의 발견] 소신

문재익 전 강남대 교수(문학박사)
문학박사 문재익(칼럼니스트)

소신(所信)의 사전적 정의는 굳게 믿고 있는 바, 또는 생각하는 바의 의미이며, 유의어는 견해(見解: 사물이나 현상에 대한 의견이나 생각), 생각, 주관(主觀: 자기만의 견해나 관점), 신념(信念: 굳게 믿는 마음)이다. 흔히 쓰이는 사례[(事例: 어떤 일의 전례(前例: 전부터 있던 사례)나 실례(實例: 구체적인 실제의 본보기)], 나무위키에서는 “‘소신 주장’, ‘소신 발언등의 표현이 대표적으로, 문자 그대로의 의미는 당사자의 뚜렷한 의지, 주관(主觀)’을 강조하고, 다수를 차지하는 주위의 의견, 분위기에도 흔들리지 않는, 자신의 이익과는 배반(背反: 논리적으로 양립할 수 없음, 모순)되지만, 신념을 위하여 하는 발언이나 행위 등 대체로 긍정적 의미로 쓰인다.”고 설명하고, 덧붙여 그러나 소신 발언이라고 해서 살펴보면, 다수의 의견에 동조(同調: 남의 주장을 따르거나 보조를 맞춤)하는 것을 소신이라고 남발(濫發: 어떤 말이나 행동을 함부로 하는 것)하는 모습이 보이는 사례가 적지 않고, 단순히 개인의 주장을 미화(美化: 아름답게 꾸밈)하거나, 그저 멋있게 보이려고 무분별(無分別)하게 남발(濫發)될 수 있는 표현이니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한다. 소신에 관한 한자어에는 묵수(墨守: 제 의견이나 생각 또는 옛날 습관 따위를 굳게 지킴)와 특립독행(特立獨行: 세속에 따르지 않고 스스로 믿는 바를 행함)이 있고, 우리가 흔하게 쓰는 부화뇌동(附和雷同: 줏대 없이 남의 의견에 따라 움직임)은 소신의 반대 개념이다.

소신과 비슷한 말 같지만, ()이 다른 고집(固執: 자기 의견을 굳게 내세워 버팀, 또는 그러한 성질), 아집(我執: 자기중심의 좁은 생각에 집착하여 자신만을 내세워 버팀), 독선(獨善: 자기 혼자만이 옳다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일), 지조(志操: 좋은 원칙과 신념을 지켜 끝까지 굽히지 않는 꿋꿋한 의지 또는 그러한 기개[氣槪: 씩씩한 기상(氣像: 사람이 타고난 올곧은 마음씨와 그것이 겉으로 드러나는 모양)과 꿋꿋한 절개(節槪: 신념·신의 따위를 굽히지 않고 지키는 굳건한 마음이나 태도)]), 그리고 신조(信條: 굳게 믿어 지키고 있는 생각 - 대표적 예로 생활신조근검절약’)가 있다.

그렇다면 소신이 유의어인 신념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먼저 소신은 개인이 가지고 있는 확고한 믿음이나 주장을 의미한다. 이는 개인의 가치관, 생각, 경험 등에 근거하여 형성되며, 그 사람이 옳다고 믿는 것을 고수(固守: 굳게 지킴)하고 행동하는 기준이 되는 것이고, 신념이란 개인이나 집단이 가지고 있는 뿌리 깊은 믿음이나 원칙을 말하는 것으로, 종교, 철학, 이념 등 다양한 분야에서 찾아볼 수 있고, 그것을 바탕으로 인간의 삶과 행동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신념은 개인이나 집단의 삶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추구하는 가치와 목표를 규정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한마디로 같은 듯 그 결()이 조금은 다른데, ‘자신이 내뱉은 말은 어떻게든지 지키려는 언행일치(言行一致)’가 신조라면, ‘생각하고 믿는 것, 흔들림 없이 나아갈 때신념이고, 상황에 따라서 믿는 바대로 행동하는 것소신 있다라고 표현하며, 다르게 표현할 때 주관이 뚜렷하다’, ‘신념이 있다라고도 표현하기도 한다.

우리문화신문에 수원대 김광옥 명예교수님이 기고(寄稿)고약해, 임금에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라는 제하(題下)의 글에서 고약해(高若海: 1377년 우왕 3~1443년 세종 25)는 형조참판(2), 개성부유수(3, 부사) 등을 지낸 문관이었다. 세종대왕 아래에는 유독 고집 센 신하가 있었다. 바로 고약해로, 그 당시 중직(重職: 중대한 책임이 있는 직무)을 지낸 명재상으로, 세종에게 사사건건 직언(直言: 기탄없이 자기가 믿는 바를 말함)하는, 한마디로 소신 발언을 서슴지 않았던 신하였다. 오죽하면 그 이름을 빗대 이런 고약해 같으니라는 말이 나온 것으로, ‘고약해 같다라는 말은 비위나 도리에 맞지 않는 것을 표현할 때 쓰는 고약하다라는 말로 발전했다고 한다.”라는 구절은, 서슬 퍼런 옛 왕조 시대에 때로는 죽음을 각오하고 임금님께 소신 발언, 진언(進言)을 드린 충신(忠臣)이 있었다는 반증(反證: 어떤 사실을 반영하여 나타냄)인 것 같다.

그러나 오늘날 소신이라는 단어를 현실적으로는 위정자(爲政者: 정치하는 사람)들의 소신 발언’, 개인이나 기업의 소신 투자[투기(投機: 기회를 엿보아 큰 이익을 보려는 짓)가 아닌 전략적(戰略的)인 투자로 더 높은 곳을 향함]’가 있고, 그리고 대입 지원의 당사자인 수험생의 소신 지원으로 많이 쓰이고 있다. 요즘은 대입 지원 시 동시에 여섯 곳까지 지원할 수 있어 정시 지원에서 적정, 안정, 소신등으로 지원한다. 한마디로 적정은 배치표에 나오는 점수와 거의 비슷하거나 약간 상회(上廻: 웃돎)하는 정도’, ‘안정은 배치표에 나오는 점수보다 하향(下向) 지원일 때’, 소신은 점수는 못 미치지만 불합격할 셈 치고 가고 싶은 대학을 지원하는 것으로 보면 된다. ‘대학에 가는 것이 경험에 의하면, 평소 공부 열심히 하는 것이 우선이지만, 막판 원서 잘 쓰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대학 가는 것, 노력이다. 그러나 다분히(多分) ‘(: 운수)’과 재수(財數: 좋은 일이 생길 수 있는 운수)도 작용하기 때문이다.

소신을 지킨다는 것은 무엇인가? 먼저 어떤 손해를 감수(甘受: 책망이나 고통 따위를 달게 받아들임)하고서라도 끝까지 간다는 것이고, 다음으로 당장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그리고 모두가 인정(認定)해 주지 않는다 해도 자신이 세운 원칙은 묵묵히 지켜 나간다는 것으로, 요즘 세상은 대체로 영악(靈惡: 이해가 밝고 약음)하고 교활한 사람이 인정받고 성공하는데도, 소신을 말하고 원칙을 지키는 것은 몹시 무모(無謀: 신중하지 못하고 사려 깊지 못함)해 보이고 위험하게 보이지만, 매우 용기 있고 고결(高潔: 고상하고 순결함)한 것이다. 혹자(或者: 어떤 사람)세균, 바이러스, 감염병() 코로나보다 무서운 것이 제 할 일, 역할 제대로 안 하는 사람이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그런 사람은 누구인가? 도처(到處: 여러 곳)에 존재하겠지만, 작금(昨今: 요즈음)의 소수(小數) 의원들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야 하는, 어찌 보면 사명감이기도 한 민의(民意: 국민의 의사)를 저버리고, 소신 없는 당리당략(黨利黨略)만을 위한 발언이나 표결(表決)에서는 거수(擧手: 손들음, 찬성표 던짐)기 역할만 하고, 청문회에서는 국민의 눈높이에 맞지도 않은 후보자를 자기편이라 해서 거의 궤변(詭辯: 이치에 맞지 않은 구변)으로 쉴드(shield: 방패, ‘옹호 발언’) 쳐주거나, 무엇보다도 할 말 못 하고 침묵하고 있는 위정자가 아닌가 싶다. 그러나 이들과 대비(對比)되게, 소신 발언을 서슴없이 할 뿐만 아니라, 아예 정계를 은퇴해 버리거나 다음 공천의 기득권(旣得權)을 포기해 버리기까지 하는 의원들도 있어, 국민들에게는 신선함, 국가에는 희망을 주기도 한다.

우리는 이 대목(특정한 부분이나 대상)에서 명사들의 명언들을 인용하는 것이 적절할 것 같다.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타인에게 존경받을 만한 덕(: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행하려는 어질고 올바른 마음이나 훌륭한 인격)과 타인이 두려워할 만한 뚜렷한 소신이 필요하다.’ 프랑스 작가 조제프 주베르의 말이고, ‘때로는 침묵이 가장 강한 외침이다. 그런데 소신은 말보다 태도에서 빛이 난다.’ 중국 고대 사상가 노자의 말이며, ‘세상의 칭찬은 때로 독이 된다. 침묵 속에서도 소신을 지키는 당신은 이미 자유다.’ 영국 작가이자 언론인 조지 오웰의 말이다. 좀 더 현실적인 명언들로는, ‘사람들이 모두 한 방향으로 달릴 때, 그 흐름을 멈추고 소신을 갖고 자신만의 길을 가는 자()가 진정한 리더다.’ 티베트 망명정부 지도자, 승려 달라이 라마의 말이고, ‘소신을 갖고 자신의 길을 가는 자는 박수를 받지 못할 수도 있지만, 결국 흔들리지 않는 뿌리가 된다.’ 오스트리아 출신, 미국 대학교수, 의사 빅터 프랭클의 말이며, ‘내가 소신 있게 옳은 길을 가고 있다는 확신은 세상의 박수보다 값지다.’ 미국의 철학자, 시인, 수필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말이다. 여기서 가장 울림을 주는 명언으로는 첫 번째 주베르의 말인 것 같다. 왜냐하면, 소신이란 우리의 행동을 이끌어 주는 원칙이기도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도록 우리를 지켜 주는 힘이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불의(不義)와 타협하면 자신에게 득(: 소득이나 이득)이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자신의 소신에 따라 단호히 거절한 그 결과는, 타협했을 때보다도 더 큰 득, 결실을 얻게 되는 경우도 있다. 소신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 가치를 증명하기도, 발휘(發揮: 떨쳐 나타냄)하는 것으로, ‘성공의 길, 앞길을 열어 주게 된다.

그렇다면 소신과 시간의 관계’, 그리고 소신의 가치(價値)’는 무엇인가?

소신 있는 사람에게 시간, 세월은 가까운 친구이자 든든한 지원자이다. 원칙을 갖고 올바르게 살아가는 사람은 시간이 흐를수록 그 가치, 진가(眞價: 참된 값어치)를 발휘(發揮: 능력을 떨쳐 나타냄)하게 되어, 주위 사람들의 존경도 받게 되는 법이다. 무엇보다도 그런 사람은 변함없는 일관된 행동신뢰할 수 있는 태도를 유지(維持)하기 때문인 것이다. 그러므로 소신 있는 사람들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서 진정한 가치가 드러나게 될 뿐만 아니라, 그들의 덕과 원칙이 더욱 빛을 발하게 되는 것이다. 그들은 항상 노력하고, 올바른 길을 걷고, 신뢰로 인간관계를 쌓아가기 때문이다. 그 결과 소신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당장은 어려움이나 손해를 본다 해도, 시간이 지나면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이나 결과를 얻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소신은 우리에게 방향을 제시해 주는 나침반과 같은 역할을 해 주는 것이다. 소신 있는 사람은 자신만의 원칙과 철학이 있어 어떤 상황에서도 길을 잃지 않게 되는 법이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이런 소신은 성공을 위한 가장 중요한 요인 중 하나이고, 또한 다른 사람들, 특히 주변 사람들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어 존경받을 수 있는 요인 중 하나로, 그 값어치, 가치가 있는 것이다.

사실 소신껏 산다.’는 것은 참 어렵다. 범인(凡人: 평범한 사람들)은 소신껏 살기보다는 남이 보는 내 자신이 무섭고, 세상이 두려워서 소신보다는 많은, 다수(多數)의 사람들이 따르는 것을 따르며 살아간다.’ 설령 소신껏 살아간다 해도, 내가 소신이라는 이름으로 착각이나 고집, 그리고 아집이나 독선이 아닌지 반드시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소신이란 무엇보다도 정도(正道: 올바른 길, 도리)를 지켜 나가는 생각과 행동이라야 하며, 그래야만 성공에 이르는 첩경(捷徑: 지름길, 어떤 일에 이르기 쉬운 방편)이 된다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젊은 날 현업(現業)에 종사할 때 정도(正道)에 따른 소신껏 살아가게 되면, 은퇴하고 난 뒤의 노년은 꺼리낌도, 꺼림칙할 것도, 그리고 지난날에 대한 후회는 물론이고, 아쉬움이나 미련(未練)도 남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으로 여생(餘生)을 평안(平安)하게 영위(營爲: 일을 꾸려 나감)할 수 있게 된다. 더욱이 돌이켜 지난날을 반추(反芻: 되새김)해 볼 때, 보람이 되기도, 뿌듯하기도 하며, 내 자신이 대견스럽기(흐뭇하고 자랑스러움)까지도 한 법이다. 사람이 노년이 되면 미래를 설계하고 계획하기보다는 지난 과거를 회상(回想)하는 시간이 더 많아지게 된다. 노년에,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영혼의 삶을 위해 정도(正道)를 지키며, 소신으로 살아가는 젊은 날들을 위해’, 우리 모두 다 함께 건배(Cheers)! 파이팅(Figh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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