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리(順理)의 사전적 정의는 ‘순(順: 순할 순)한 이치[理致: 도리에 맞는 취지나 사물의 정당한 조리(條理: 글이나 말 등의 앞뒤가 들어맞고 체계가 서는 갈피, 두서)]에 따르다, 또는 도리(道理: 사람이 마땅히 행해야 할 바른 길)나 이치에 순종함’의 의미이며, 유의어는 순도[順道: 바른 도리, 순당(順當: 순서나 도리에 맞아 마땅함)한 도리, 도리를 따름], 정도, 이치, 도리이며, 동사형은 ‘순리를 따르다’이다. 순리의 반의어는 역리(逆理)로, 사전적 정의는 ‘사리(事理: 일의 이치)에 어긋남, 살아가는 이치(理致)를 거스름’이라는 의미인데, 유의어는 배리(背理)이고, 순역(順逆)이라는 말은 순리와 역리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순리와 역리에 대한 대표적인 문구(文句: 글귀)로, 누구나 다 알고 있을 법한 구학(舊學) 명심보감[明心寶鑑: 중국의 공자님과 맹자님으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수신(修身: 마음과 행실을 바르게 닦아 수양함)서(書)]에 나오는 말인 ‘순천자존(順天者存) 역천자망(逆天者亡)’으로, 이는 순천자는 흥(興)하고, 역천자는 망(亡)한다는 말로, 다시 말해 ‘천지(天地)의 뜻을 따르는 사람은 흥하고, 거스르는 사람은 망한다.’는 것인데,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하늘의 순리에 순응(順應: 환경이나 변화에 적응하여 따름)하는 자(者)는 잘 되고 번성(繁盛)하게 되지만, 하늘의 순리를 거역(拒逆: 거스름)하는 자(者)는 낭패(狼狽: 일이 실패로 돌아가 매우 딱하게 됨)를 당하게 된다.’는 의미이다. 여기서 하늘이나 천지(天地)의 뜻이란 무엇인가? 바로 순리로, 순리는 큰 틀에서 ‘이치와 도리’를 포함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치와 도리는 무엇인가? 다시 반복해 말하자면, 이치(理致)는 ‘사물의 정당한 조리(條理: 일이나 행동이 앞뒤가 들어맞고 체계가 서는 갈피, 두서) 또는 도리에 맞는 취지(趣旨: 어떠한 일의 근본이 되는 목적이나 긴요한 뜻, 의도)’이고, 도리(道理)는 ‘사람이 마땅히 행(行)해야 할 바른 길’을 말하는 것으로, ‘순리에 순응한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사람의 도리와 이치를 쫓아 그에 어긋남이 없음’을 말하는 것이다. 결(結)이 조금 다르지만, 비슷한 말로 사필귀정(事必歸正: 모든 일이 반드시 바른 길로 돌아감)과 인과응보[因果應報: 과보(果報): 선을 따르면 선의 결과가, 악을 따르면 악의 결과가 반드시 따름], 종과득과(種瓜得瓜: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생김)가 있다.
인간들은 종종 땀 흘려 노력하기보다는 가시(可視: 눈에 보이는)적인 성공이나 물질, 돈을 먼저 움켜쥐려 하고, 기다림과 설렘보다는 기쁨을 먼저 맛보려 하며, 산 정상을 정복하기 위해 산 아래의 안전과 휴식을 위한 중요한 베이스캠프보다는 정상을 먼저 정복하려 한다. 한마디로 애써 노력하려 하기보다는 결과를 먼저 기대하고, 그리고 자신의 능력 이상을 먼저 기대하기 때문에 신중(愼重: 썩 조심스러움)하지 못하고, 탐욕스럽고, 조바심 내고, 빨리 좌절(挫折: 마음이나 기운이 꺾임)하며, 그리고는 포기하고 마는 것이다. 천지자연의 이치는 봄 다음 여름과 가을을 건너뛰고 절대로 겨울을 먼저 맞이하게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뿌리에서 곧바로 꽃을 피우지 않게 하기에 가지와 잎 사이 아름다운 꽃을 감상할 수 있게 되고, 가을에는 또 어김없이 열매를 우리가 얻게 된다. 만물은 물이 흐르듯, 태어나고 자라나서 또 사라지게 된다. 자연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큰 깨달음을 준다. 모든 것은 순서가 있고, 기다림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닌 과정이었다고. 시인 서정주가 쓴 ‘국화 옆에서’라는 시(詩) 초장(初章)에서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리 울었나 보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가을에 꽃 한 송이를 피워내는 데에도 시간, 계절의 변화와 긴 기다림이 필요한 것이다. 하나 더, 우리네 삶과 가장 밀접한 인간의 생로병사(生老病死)를 단적(端的: 곧 바르고 명백한)으로 보여주는 12포태법(胞胎法)을 보아라. 포태양생(胞胎養生) 욕대관왕(浴帶冠旺) 쇠병사장(衰病死藏)은 ‘부모님에게서 태어나고, 입신양명(立身揚名)하고 나서, 늙고 병들어 죽으면 땅에 묻히게 된다.’는, 우리네 인생 전 과정을 순리에 맞게 풀어 놓은 것이다.
순리에 대한 또 다른 기준이 무엇인지를 밝히기 위해, 인터넷에서 돌고 있는 ‘명상일기’ 중 일부를 발췌(拔萃: 글 가운데 필요하거나 중요한 부분만을 뽑아냄, 또는 그런 내용)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사람이란 무릇 진리를 행하고 살아가야 한다. 진리란 ‘순리’이다. 그리고 가장 ‘상식적인 것’이 순리이다. 진리란 멀리 있는 것이 아니고 가장 ‘상식적인 것’이 순리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나이 많은 연장자(年長者)가 나이 적은 연소자(年少者)에게 공경(恭敬: 공손히 섬김)받고 대접받는 것이 기본인 그 첫 번째이고, 많이 아는 자(者)가 적게 아는 자(者)에게 대접받는 것이 그 두 번째이며, 젊어서 가족들을 위해 피땀 흘린 가장(家長)인 남편, 아버지가 노년에 아내나 자식들에게 대접받는 것이 그 세 번째이며, 가장인 남편은 가족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없게 해야 하며, 아내는 집안 살림을 잘 해내 가족들이 일상에 불편함이 없게 해야 하는 것이 그 네 번째이며, 기본이 튼튼해야 더 높이 공부하는 것이 의미가 있다는 것이 그 다섯 번째이며, 대중교통을 타고 갈 때에 노약자나 장애인, 임산부에게 자리를 양보해 주어야 하는 것이 그 여섯 번째이며, 부모는 자식들에게, 교육자는 교육생들에게 모든 면에서, 특히 생활에 본(本; 본보기, 모범)이 되어야 하는 것이 그 일곱 번째이며, 그밖에 수없이 많은 것을 나열할 수는 있지만, 무엇보다도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의 위치에서 맡은 바 직분(職分: 직무상의 본분, 마땅히 해야 할 본분)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애국(愛國: 자기 나라를 사랑함)이고 우국(憂國: 나랏일을 근심하고 염려함)이라는 것이 그 마지막이다. 이것들 모두 하나하나가 상식이고, 진리이며, 순리이다. ‘순천자는 흥하고 역천자는 망한다.’는 말도 곧 ‘자연의 섭리(攝理: 자연계를 지배하고 있는 원리와 법칙)와 하늘의 준엄(峻嚴)한 이치에 따르라’는 평범한 상식이자 진리이고, 순리이다.
최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정치권에서 ‘공정과 상식, 그리고 원칙’이라는 말을 자주 들어 왔던 것으로 보아, 정치권의 화두(話頭: 이야기 말머리)가 아니었던가 싶다. 그렇지만 우리의 정치권은 공정, 원칙, 상식, 그리고 진실과 진리를 외면한, 한마디로 순리가 아닌 역리의 길을 가고 있지 않았었나 하는 우려(憂慮: 근심과 걱정)를 해 왔던 것은, 의식 있고 양식 있는 국민들이라면 공통적인 생각이 되었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말하는 바이다. 우리 사회의 갈등과 분열, 대립은 날로 심화되고, 역사와 정체성은 그 어느 때보다도 흔들리고 있고, 국민을 하나로 묶고 화합과 단합으로 이끌고 가야 할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민생을 우선 챙겨야 할 정치권은 삼권분립은 지켜지지 않고, 법치 파괴, 국민들 갈라치기하고, 언행 불일치는 다반사이고, 정책보다는 당리당략만을 우선시하는 일부 정치인들의 횡포는 국민을 잠 못 들게 하고, 특히 북핵의 위협은 국민들의 불안감을 더욱 가중(加重)시키고 있어 우방국들과 돈독(敦篤)한 외교가 절실한 시점이다. 그렇지만 지금까지는 상식과 합리, 보편적 진리, 순리에 맞지 않은 어쩌면 역리의 길을 걸어 왔다 해도, 이제 한 달여 남짓 된 새 정부가 이제까지의 걸어온 역리의 길을 벗어나 순리의 길을 가기를 바라는 마음은 온 국민들이 간절히 바라고 바라는 바일 것이다.
순리와 진리는 ‘현실이나 사실에 분명하게 맞아떨어지는 것’으로 보편적·불변적으로 알맞은 것을 말한다. 이때 참이나 진실이라고도 말하는데, 진리에 대한 정의는 철학, 논리학, 수학 등에서 다양하게 쓰이고 있는 것으로, 우리가 일상에서 말하는 진리는 주로 ‘철학적 관점’에서 말해지는 것이다. 우리에게 객관적 정의로 울림을 주는 명사들의 명언들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여기서 진리라는 단어를 ‘순리’로 바꿔 보아도 의미상 손색(遜色: 서로 견주어 못한 점)이 없을 것 같다. ‘진리는 간단하다.’ 영국의 물리학자, 천문학자, 수학자 아이작 뉴턴의 말이고, ‘진리는 종종 불편할 수 있지만, 결코 변하지 않는다.’ 영국의 수상 벤저민 디즈레일리의 말이며, ‘진리는 항상 그 자리에 서 있다.’ 영국의 소설가 조지 오웰의 말이다. 또한 ‘진리는 가끔 놀라울 정도로 간단하다.’ 영국 수상 윈스턴 처칠의 말이고, ‘진리는 우리의 평범한 생활 속에 숨어 있다.’ 미국의 사상가 에머슨의 말이며, ‘진리는 때로는 잠들어 있지만, 절대로 죽지는 않는다.’ 인도 수상 마하트마 간디의 말이다. 그리고 ‘진리는 항상 찾고자 하는 사람에게 나타난다.’ 브라질 소설가, 베스트셀러 작가 「연금술사」를 쓴 파울로 코엘료의 말이고, ‘진리는 어떤 힘에도 지배당하지 않는다.’ 미얀마 정치가 아웅산 수치 여사의 말이며, ‘진리는 가장 강력한 무기이자 가장 높은 도덕적 원칙이다.’ 미국 인권 운동가 마틴 루터 킹 박사의 말이다.
순리나 역리는 거창(巨創: 일의 규모나 형태가 매우 크고 넓음)한 것 아니다. 상식적이고 평범한 것, 거기다가 우리의 전통이나 문화에 걸맞게 생각하고 행동하면 그것이 순리요, 거스르면 그것이 바로 역리인 것이다. 순리라는 기준은 때로는 상황에 따라 사람마다 다를 수는 있지만, 그러나 대다수의 사람들은 만족할 수 있고, 순리가 항상 올바른 결과를 가져올 수는 없지만, 그러나 가장 확률적으로 실패할 경우의 수가 적으며, 순리라는 것은 어떤 일을 해결하기 위한 가장 간단한 방법이기 때문에 설령 일이 꼬인다 해도 다시 풀어가기가 쉽다. 그런데 세상사 모범 답은 있을지언정 정답은 없는 법이다. 편법(便法: 정상적인 절차를 따르지 않은 간편하고 손쉬운 방법)이거나 비(非)도덕적일 수도 있지만, 역리도 문제를 풀어간다는 면에서는 한 방편(方便: 그때그때의 경우, 형편에 따라 변하고 쉽게 이용하는 수단)이 될 수가 있다. 그러나 염두(念頭: 마음속)에 두어야 할 것은, 역리로 풀면 성공할 확률도 분명 있고 나쁜 결과를 초래하지는 않는다 해도,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는 대체로 오점(汚點: 더러운 점, 명예롭지 못한 흠이나 결점)으로 남을 공산(公算: 확실성의 정도, 확률)이 크고, 무엇보다도 역리로 일을 풀어가는 것은 짧은 기간은 효과를 보기에는 적합할지 모르지만, 그 효과는 한시적(限時的: 일정 기간 한정된)인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순리를 버리고 역리를 따름이 재앙(災殃)을 부르는 원인이다.’ 송(宋)나라 주자(朱子)가 편찬한 유교 입문서(入門書)이자 수신서(修身書) 소학(小學)에 나오는 말과, ‘현명한 사람은 세상에 자신을 맞추고, 고지식하고 현명하지 못한 사람은 세상을 자신에게 맞춘다.’ 아일랜드 문필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조지 버나드 쇼의 말을 인용하는 것으로 이 글의 대미(大尾)를 장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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