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blessing)의 사전적 정의는 ‘어떤 대상이나 사람의 행복을 빎, 또는 내(內)적, 외(外)적 행복을 느낌, 그리고 그 행복’의 의미이며,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이 복을 내림’이라는 의미로, 유의어에는 강복(降福: ‘신께서 내리는 복’으로 축복보다 한 단계 높음), 기복(祈福), 복(福)이 있고, 반의어는 저주(詛呪: 남에게 재앙이나 불행이 일어나도록 빌고 바람), 그리고 재앙(災殃: 불행한 변고)이다. 성경에서 축복이라는 히브리어는 베라카(berakah)로, 고대 히브리인들에게 베라카는 ‘하나님의 선(善)하심과 은혜의 힘을 전달하거나 부여(附與)하는 것’으로, 대개 입으로 하는 말을 통해 전달되며 안수(按手) 행위를 수반(隨伴)하였다.
축복에 관한 명사들의 명언들로는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장 ‘축복받는 것 한 가지’를 꼽는다면 아마도 ‘매사(每事: 하나하나 모든 일)에 감사하는 마음’일 것이다. ‘감사의 마음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다.” 미국의 정치가 제임스 이스트 말이고, ‘감사는 우리의 축복을 두 배로 만든다.’ 이솝우화에 나오는 말이며, ‘감사는 삶의 모든 축복을 불러온다.’ 로마시대 변론가(辯論家: 사리를 밝혀 옳고 그름을 따지는데 능숙한 사람) 마르커스 튤리우스의 말이다. 그리고 평소 ‘생활의 자세’와 ‘마음 씀씀이’에 대한 다음 명언들에 귀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당신은 축복을 받게 될 것이다. 당신이 이미 축복을 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는 그 순간에 말이다.’ 미국의 베스트셀러 작가인 브라이언트 맥길의 말이고, ‘내가 받은 축복을 하나씩 세어보니 나의 삶 전체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미국의 작곡가, 시인 윌리 넬슨의 말이며, 가장 울림을 주는 명언으로 마음속 깊이 새겨야 할 명언 중 으뜸으로는 ‘남의 잘됨을 축복하라. 그 축복이 메아리처럼 나를 향해 돌아온다.’ 우리의 자랑스러운 세계적 기업 삼성의 故 이건희 회장님의 말씀이다.
우리네 ‘삶에서 축복이 되는 경우’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첫째, ‘결혼’의 축복: 결혼은 한 개인으로 보았을 때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이다. 한 마디로 ‘결혼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사람은 누군가를 의지하면서 살아야만 한다. 특히 노년이 되어 배우자나 자식 양쪽 다 없으면, 홀홀단신(忽忽單身)으로 의지할 데 없이 고립무원(孤立無援: 고립되어 구원 받을 데가 없음)의 독거노인이 되는 것이다. 불가(佛家)에서는 ‘내가 이 세상에 온 것은 결혼해서 자식을 낳고 그 자식을 키우는 것이다.’고 한다. 오늘날 젊은이들 중에는 비혼(非婚)주의자들이 종종 있다. 그러나 ‘결혼은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는 말들을 하지만, 세상 연륜(年輪) 있는 사람들은 그래도 ‘후회하더라도 결혼은 해야만 한다.’는데 전적으로 동의할 것이다.
둘째, ‘새 생명, 신생아(新生兒: 갓난아이) 탄생의 축복: 요새 같은 인구절벽으로 치닫고 있는 우리의 현실에서 가장 ‘큰 축복’이라고 말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도 좋고, 국가도 좋다. 이것이 곧 우국(憂國: 나랏일을 근심하고 염려함)하고 애국(愛國: 나라를 사랑함)하는 길이다. 한 개인이 애국한다는 것, 그렇게 거창한 것 아니다. 자기 위치에서 본분(本分: 마땅히 지켜야 할 직분)을 다 하는 것이다. 적령기에 결혼해서 자식을 낳는 것이 본분을 다하는 것들 중 중요한 하나이다. 성경에서 “자녀는 하나님의 선물이요(창세기, 시편), 여호와 하나님의 기업이며(시편), 노인의 면류관(冕旒冠: 제왕의 정복에 갖추어 쓰던 관)(잠언)”이라고 했다. 독일의 민속학자, 언어학자 빌헬름 슈미트는 ‘나이가 들면 자식이라는 존재가 마음의 평정(平靜: 평안하고 고요함)을 위한 하나의 이유가 된다. 자식이 있어서 부모의 인생이 계속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비(非)혼자나 독신주의자 그리고 ‘무(無)자식이 상팔자’라는 사고방식의 소유자들은 심각하게 고민하고 재고(再考: 어떤 일이나 문제 따위를 다시 생각함)할, 결코 지나칠 수 없는 중대한 문제이다.
셋째, 만남(소중한 인연)의 축복: ‘모든 만남은 우리에게 삶의 성숙과 진화를 가져오게 된다. 다만 그 만남에 담긴 의미를 올바로 보지 못하는 자(者)에게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인연일 뿐이지만, 그 메시지를 볼 수 있고 소중히 받아들일 수 있는 모든 만남은 영적인 성숙의 과정이고, 나아가 내 안의 나를 찾는 깨달음의 과정이다.’ 목탁소리 유튜브 운영자, 저술가 법상스님의 말씀이다. 영어 단어 ‘happiness(행복)’는 happen(우연히 일어나다)에서 유래(由來)된 것으로, 어찌 보면 ‘행복’도 ‘우연이고 일순간’이기도 한 것 같다. 그래서 사람은 사람을 잘 만나야 하고 관계를 잘 맺는 것이 복(福)이고, 그 관계를 잘 이어나가는 것은 더 큰 복, 축복인 것이다. 부모, 자식, 형제와의 만남은 숙명(宿命: 피할 수 없는 운명)이지만, 부부의 만남은 운명(運命: 인간을 포함한 모든 것을 지배하는 초인간적인 힘)이다. 만남은 인연이지만, 인연은 관계이고, 관계는 노력이다. 사람은 살면서 사람을 잘 만나야 한다. 성공으로 가는 길, 인복(人福: 다른 사람의 도움을 많이 받는 복), 인덕(人德)이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노년까지 행복을 보장할 수 있는 것은, 좋은 배우자와의 만남이다. ‘배우자와 잘 만나면 축복이고, 잘못 만나면 재앙[災殃: 불행한 변고(變故)]’인 것이다. ‘진실한 만남, 인연을 맺어 놓으면 좋은 삶을 마련하는 데에는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 故 법정 스님의 말씀이다. 덧붙여 ‘우리는 인연을 맺음으로써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피해도 많이 당하는데, 대부분의 피해는 진실 없는 사람에게 진실을 쏟아 부은 대가(代價)로 받은 벌(罰)이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이는 ‘시작이 아닌 끝이 좋은 인연’을 강조하신 말씀 같다.
넷째, ‘건강’의 축복: 사실 ‘한 인간에게서 건강은 최우선이다.’라는 말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건강에는 육체적 건강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정신적 건강도 중요하다. 한마디로 건강 하면, 육체적, 정신적 건강을 말하는 것이다. 건강은 우선 부모의 DNA, 즉 유전자가 중요하다. 한 마디로 타고나는 것이다. 그런데 그에 못지않게 어려서부터 부모에게서 받은 가정교육, 습관도 중요하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본인 스스로 깨닫고 실행하는 ‘절제력’도 중요한 것이다. 한 마디로 타고난 건강도 ‘본인 스스로 운용(運用)에 전적으로 달려 있다’는 것이다. 건강을 가진 자(者), 그 누구를 부러워하리?
다섯째, ‘부모님’의 축복: 인간의 오복(五福: 유교의 다섯 가지 복)을 다른 각도로 보면 첫째, 부모 복, 둘째, 동기간(同氣間; 형제, 자매 사이) 복, 셋째, 배우자 복, 넷째, 자식 복, 마지막으로 대인관계에서 인복, 인덕이다. 사회에서 성공하려면 인복, 인덕을 타고나야 하고, 말년이 좋으려면 자식 복이 있어야 하며, 노년까지 행복하려면 배우자 복이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부모 복은 어떠한가? 기본적으로 ‘부모 복이 있어야 한 평생을 원만하게 살 수 있는 것’이다. 가끔은 주변에서 ‘부모 복이 없으니 배우자 복도 없고, 자식 복도 없고, 인복도 없어!’라고 푸념(마음속에 품은 불평)하는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여섯째, 생활 속의 ‘소소함, 단조로운 일상’의 축복: 사람들은 시계추(錘: 저울 추)처럼 변함없이 반복되는 일상에 진저리(넌더리: 몹시 싫증이 나거나 귀찮아 떨쳐지는 몸짓)를 낸다. 학생이면 매일 반복되는 등·하교, 직장인이면 출·퇴근, 가정주부이면 밥 짓고·설거지 등. 그러나 어느 날 중병(重病)이 들어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서 아침 창밖으로 보이는 학생들의 등교하는 모습, 직장인들의 출근 모습을 보면, 그렇게 부럽기도 하고 불평하던 평소의 소소한 생활이, 그리고 건강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 해도 몸이 약하거나 아파 드러누워 있으면 다 소용없고, 고생 끝에 복이 온다 해도 죽으면 다 소용없는 일이다. 멋진 인생, 행복한 삶은 두 발로 걸어 다니고 건강할 때까지만 가능한 법이다. ‘먹고 싶은 거 먹고, 하고 싶은 거 하고, 가고 싶은 데 가고, 보고 싶은 사람 보고 사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지 뭐 있겠나?’
일곱째, ‘명상과 기도’의 축복: 명상은 ‘고요히 눈을 감고 깊이 생각함, 또는 그런 생각’이고, 기도는 ‘인간보다 능력이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절대적 존재에게 빎, 또는 그런 의식’으로, 둘 다는 마음의 근육을 발달시키고, 생활 속에 습관이 되면 이기심, 자만심 그리고 피해의식 등 모든 부정적 감정들을 뇌리(腦裏: 사람의 의식이나 기억, 생각 따위가 들어 있는 영역)에서 밀쳐내고 피할 수 있다. 명상은 마음을 고요히 하고 현재 순간에 집중하는 수련으로, 목표는 내면의 고요함, 명료(明瞭: 뚜렷하고 분명)함, 고양(高揚: 정신이나 기분 따위를 높이 북돋음)된 ‘마음 챙김’을 달성하는 것이라면, 기도는 특정 목적을 위해 더 높은 힘이나 신(神)과 의사소통을 하는 것으로, 인도(引導; 가르쳐 이끎)를 구하거나 감사를 표현하고 용서를 구하기도 하는 것으로, 둘 다는 영적 또는 종교적 수행과 관련이 있지만 목적, 접근 방식 및 기술이 서로 다른 두 가지 별개의 수행법이다. 명리학자, 칼럼니스트, 작가 조용헌 교수는 일평생을 행복하게 살기 위한 방법으로 첫째, 독서, 둘째, 보시(布施: 베풂, 남을 돕는 것), 셋째, 명당[明堂: 양택(집터), 음택(묘터)] 잡는 일, 넷째, 명상이나 기도,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명[知命: 천명(天命: 하늘의 운명, 천수)을 앎]을 들었다.
여덟째, 함께하는, 특히 노년에 ‘친구가 있다’는 축복: 노년에 행복한 삶을 영위(營爲: 일을 꾸려 나감)하기 위한 필수요건(要件: 필요한 조건)으로는 첫째, 건강, 둘째, 경제력, 셋째, 배우자, 넷째, 친구, 마지막으로 취미나 일과 같은 소일(消日: 어떤 일에 마음을 붙여 세월을 보냄)거리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노년에는 배우자와 친구 중 더 가치를 두는 것은 친구이다. 왜냐하면 배우자와는 노년에 함께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 흔한 별거나 졸혼, 이혼, 사별 등 가지각색의 형태들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친구 사귐에 있어서 새로운 친구보다 옛 친구를 더 우선시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재산을 형성하는 데 재테크(財-tech)의 투자기술이 필요하듯, 그에 못지않게 젊어서부터 우테크(友-tech)도 필요한 것이다. ‘좋은 친구를 만나려면 먼저 나 자신이 좋은 친구가 되어야 한다.’ 법정 스님의 생전 말씀이다.
아홉째, ‘고독’이라는 축복: 대표적인 예가 노년에 외로움과 고독을 견디지 못하고 아무나 만나고 사랑에 빠지는 일이다. 사람은 혼자 있다고 고독하고, 둘이 있다고 고독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인간은 원래 고독하다. 그리고 언젠가는 혼자 남는다. 단지 빨리 오느냐, 조금 늦게 오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누군가와 사랑을 나누기는 서로 상호작용(interaction)이 필요하다. 그러다 보면 상대에게 실망하고, 상처받게 되는 법이다. 그리고는 후회 속에 지난 홀로 있던 고독한 시절이 그리운 법이다. 차라리 고독과 함께 일방통행(one way)식, 나 혼자만의 짝사랑이 더 좋다. 지난 과거의 누구든지, 아니면 지금의 그 누구와도 상관없지만, 지난날의 아름다웠던 사랑의 추억이면 어떠랴. 무엇보다도 ‘후회할 일이 없다’는 것이다. 외로움과 고독은 못 견뎌하고 싸우는 것이 아니라, 함께하고 나만의 방법으로 즐기게 되면 ‘축복’이 되는 것이다.
마지막, ‘죽음’의 축복: ‘죽음은 인간이 받을 수 있는 축복 중 최고의 축복이다.’ 소크라테스의 말이다. 만일 인간이 영생불멸(永生不滅)하게 된다면 어떨까? 아마도 우리가 살아 있는 가치는 지금보다 훨씬 더 떨어질 것이다. 한 마디로 죽음이라는 종착역을 두고 노력도 하고 남보다 앞서가려 하고, 죽어서 오명(汚名: 더러워진 이름)을 남기지 않기 위해 올바르게 살려고도 한다. 무엇보다도 죽음이 있기에 지금의 삶이 더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네의 한 평생 일련의 과정은, well-being(안녕, 행복, 참살이) → well-aging(건강한 노년 맞이) → well-dying(아름다운 죽음)으로 이어져 가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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