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박사의 생활의 발견] 노년의 회상

문재익 전 강남대 교수(문학박사)
문학박사 문재익(칼럼니스트)

* 이 글은 1960~70년대 초반 학창 시절을 보내고 지금은 70대 초반의 나이를 살아가고 있는 어느 한 노인의 지난날 회상의 글이다. 노년들에게는 인생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지난날을 반추(反芻:되새김)하는 기회로, 젊은이들에게는 인생을 설계하고 미래를 살아가는데 시절별 무엇이 중요한지를 일깨워 주고자 하는데 그 목적을 둔다.

회상(回想:remembrance, recollection)이란 지난 시절이나 옛일을 돌이켜 생각함, 또는 그런 생각의 의미이고, 심리학에서는 한 번 경험하고 난 사물을 나중에 다시 재생() 하는 일이라고 정의한다. 유의어에는 상기(想起:지난 일을 다시 생각해 봄), 추념(追念:지나간 일을 돌이켜 생각함), 추상(追想), 추억(追憶)이 있는데 추억하다지나간 일을 돌이켜 생각하다라는 의미로 회상은 회상하다로 주로 쓰이지만, 추억은 회상과 의미는 동일(同一) 해도 추억을 회상하다추억을 기억하다와 같이는 쓰이지는 않고, ‘추억에 잠기다’, ‘추억을 불러일으키다’, ‘추억하다’, ‘추억되다로 쓰인다.

사람들은 과거를 회상하고, 그 과거의 좋은 기억들의 표면만 쓰다듬을 것이다. 과거 그 당시는 촉감이 별로였고, 감흥[感興:마음에 깊이 감동되어 일어나는 흥취(興趣:마음이 끌릴 만큼 좋은 멋이나 취미)]이 별로였거나, 없었던 것들도 시간이 지나면 추억이라는 이름 하나로, 그것들은 프리미엄[premium:고급화, 미화(美化))]이 붙곤 한다. 추억도 대동소이(大同小異:서로 비슷비슷함)하다. 과거 당시는 별로 임팩트[impact:(강력한) 영향, 충격]가 없고 일상적이며, 하루하루가 같았다고 생각하는 과거의 나의 일상은 오늘 절대로 다시는 경험해 볼 수 없는 특별한 나날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상이라는 이름하에 지난날의 내가 겪었던 모든 과거의 기억은 미화(美化:아름답게 꾸밈) 되어있다. 심지어는 지난날들의 고통스러움, 우울함, 그리고 한때 가난했던 시절 까지도 말이다. 혹자(或者:어떤 이)회상이라는 것을 과거의 지나쳤던 사람들과 사건들에 대한 안부인사’”라고 말한다. 더 이상 그들을 만날 수 없고, 그때와 같은 모습을 보여 줄 수 없지만, 혹시라도 나를 구성했던 그들을 다른 모습으로나마 만나게 된다면, 나는 나름 추억의 감회[感懷:지난 일을 돌이켜 보고 느껴지는 회포(懷抱:마음속에 품은 생각이나 정(:느끼어 일어나는 마음의 작용)]에 젖게 된다. 나이가 들어 노년이 되면 대개는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다. 나도 모르게 옛사람을 떠올리거나, 옛 장소를 한번 거닐고 싶거나, 그리고 옛 추억이 스민 무엇인가를 찾으려 한다. 앞날의 계획보다는 지난날의 기억을 되살리는 시간이 많아지는 것은 바로 나이가 그만큼 들었다는 것을 실감(實感:실제로 체험하는 느낌)케 하는 것이다. 살아갈 날들보다는 살아온 날들을 뒤 돌아보게 하는 날이 이처럼 빨리 올 줄은 노년의 나이 든 사람들을 아연실색(啞然失色:뜻밖의 일에 놀라 얼굴빛이 변함)케 하는 것은 없을 것이다.

어린 시절에 대한 회상: 어른이라면 누구나 겪었던 시절이다. 국어사전의 정의로는 출생부터 고등학교 때까지로 20대 이후는 청년시절로 성인으로 간주한다. 그런데 사람마다 때에 따라 미취학 때까지만 어린 시절로 보기도 한다. 어찌 되었든 어린 시절은 한 인간의 성장기로 인격형성, 사회성 형성, 학업성취 등이 이루어지며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건전하고 건강하게 무사히 보내야 성인이 되어 원활하고 윤택한 삶을 살 수 있다는 점에서 보면 육아, 교육, 당시의 사회적 여건 등은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특히 어린 시절에 아동학대, 학교폭력, 가정폭력 등은 충격이 되어 성인이 되어서 좋지 않은 기억, 트라우마(trauma:정신에 지속적인 영향을 주는 격렬한 감정적 충격)로 남아 평생을 안고 살거나 안 좋은 쪽으로 바뀔 수도 있어, 어린 시절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한 사람의 인생이 좌우되는 중요한 시기였던 것 같다.

지난 어린 시절을 회상하면 오늘날 젊은이들이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경제적으로는 빈곤했고 사회적으로도 몇몇 사건들로 암울하던 시절이었다. 그럼에도 어린 시절의 단상(斷想:단편적인 생각)은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그때의 순수한 감정과 향기는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다. 어릴 적 그 사소한 순간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감미로웠는지 다시금 깨닫게 된다. 친구들과 함께 뛰놀던 일, 가족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일, 의료혜택이 빈약했던 그 시절, 아프면 옆에서 극진(極盡:어떤 대상에 대하여 정성을 다하는 태도) 히 간호해 주시던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누님. 무엇보다도 자식 잘되기를 그리스도인이면 예배당에 가서, 불자(佛者) 시면 부처님 앞에 엎드려, 아니면 새벽밥 지으러 나가셔 맨 먼저 정화수 떠놓고 부엌 조항신께 지극 정성으로 비셨던 어머니 덕택으로 오늘날까지 무탈하게 살아왔고, 한평생 나름대로 사회적으로 성공도 순전히 어머니 덕분(德分)이라는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저며 온다. 그래서 가끔은 허공에 대고 소리쳐 불러본다. ‘평생 고생만 하신 내 어머니~~~!

학창시절에 대한 회상: 지금 생각해 봐도 학창시절은 인생 전체의 가장 중요한 시절이었던 것 같다. 학창 시절은 어른이 되기 위한 과도기(過渡期:단계에서 다른 단계로 넘어가는 도중의 시기)이며 사춘기[思春期:몸의 생식 기능이 거의 완성되며 이성(異性)에 관심을 갖게 되고 춘정(春情:남녀 간의 정욕)을 느낄만한 나이]라는 시기를 거쳐야 하고, 무엇보다도 평생을 살아가는데 갖추어야 할 인성과 인격의 성숙도를 다지는 중요한 기간이었다. 학창시절 교육의 주된 목적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건강(健康)하고 유능한 어른으로 성장시키는 것으로, 학교생활에서 공부라는 것이 자신의 성숙학업성취그리고 가장 중요한 진로 선택의 중심이었던 것 같다. 특히 인생을 살아가는데 필수 불가결한 경제력은 어떤 직업을 선택하느냐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학교생활에 충실하고 공부도 열심히 해 학업성적이 좋아야 했던 것이다. 학창시절 가장 위험한 것은 잘못된 교우관계나 자칫 이성교제에 빠져 학업을 소홀히 하게 되면, 한마디로 시기, 때를 놓치게 되어, 두고두고 평생을 후회 속에 살고, 나중에 복구하는데 시간도 힘도 많이 드는 것이다. 학창시절의 일념(一念:한 가지 생각)학업이 주()가 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살아보니 나머지 무엇이든지 사회 나와 다 할 수 있다. 사람은 다 때, 시기가 있는 법이다.

지금까지 살아보니 고등학교 친구가 평생 가는 것 같다. 어찌 보면 그 시절 절정의 사춘기라는 시기를 함께 동고동락(同苦同樂)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도 흉허물 없는 제일 가까운 삶의 동반자이다. 그때 그 시절 향수가 느껴지는 교실, 운동장 등 한 폭의 수채화 같았던 학창시절. 그 시절 추억을 회상하면, 참으로 행복한 시절이었다. 학창시절 그렇게나 친했던 친구들 중 몇은 50여년이 지난 지금도 만나지도 소식도 없는 친구가 있다. 00! 잘 살고 있지! 우리 죽기 전에 얼굴이라도 한번 보자. 아니면 소식이라도 알려다오, 사방팔방으로 찾아봐도 찾을 수가 없구나. 부디 연락 다오.

젊은 시절에 대한 회상: 일반적으로 정규 학교교육과 군() 복무도 모두 마치고 결혼해 가정도 꾸리고 현업에 종사할 즈음이다. 한 사람의 결혼은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사람의 일생에서 치르게 되는 큰 행사)로 젊을 시절 치러야 하는 중요하고, 우선순위의 하나로 결혼하고 자식을 낳는 일이다. 특히 배우자 선택은 나와 내 가정뿐만 아니라 가족 모두의 행·불행을 결정짓는 바로미터(barometer:지표)이기 때문으로 신중을 기해야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다음으로 직업적인 면에서 창업이나 자영업을 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직장생활(봉급생활)을 하는 경우로 볼 때 무엇보다도 처세(處世:남과 사귀면서 살아감) (:)이 중요하다. 살아온 경험으로 처세술의 기본은 원만한 대인관계’, 무엇보다도 야트막하지만 폭넓은 인간관계가 가장 중요한 것 같다. 다음으로 내 자신의 성실과 정직’ ‘책임감과 약속을 생명처럼그리고 결코 불의(不義)와 타협하지 않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언변술(言辯術:표현력), 친화력(親和力: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능력: 붙임성), 그리고 솔선수범과 협동심인 것 같다. 이것들 모두 하나하나가 자신이 처한 분야에서 성공의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지난날 돌이켜보면 결혼 초창기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시절, 자식들과 오순도순 함께 살던 시절, 특히 겨울이면 단칸방에서 연탄난로 주변에서 함께 잠을 자던 일은, 진한 추억과 함께 행복했던 시절로 눈가에는 이슬이 그리고 입가에는 미소 지어지기도 한다. 지난날의 고생이 지금은 행복감으로 오는 대표적 사례인 것 같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런 과정을 거친 후 얼마 되지 않아 살림의 기반(基盤)을 잡게 된 것, 내 분야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나름대로 불굴의 의지, 피나는 노력, 처세, 그리고 올바른 가치관의 실행의 결과인 것 같다.

·장년 시절에 대한 회상: 대개는 40~ 50대 후반 늦으면 60대 초반 무렵으로 길게 잡아 정년퇴임 직전의 시기이다. 이때는 보통은 살림은 기반을 다 잡아 놓고 자식들도 성장해 있으며 직장인이면 중견간부급 이상이 되어있고, 더러는 대표가 되어있는 나이이다. 개인사업, 자영업을 하는 경우 노하우(know-how)도 붙고 고객이나 거래처도 탄탄하게 확보되어 있는 시기이다. 무엇보다도 자식들이 공부 잘하고 좋은 학교, 좋은 직장 다니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시절이다. 자식들 결혼 준비, 결혼시켜 분가(分家)도 시켜주어야 하는 시기이다. 그리고 개인적인 면에서 건강관리도 제대로 해야 하고, 무엇보다도 건전하고 정도(正道)를 지키는 절제의 사생활(私生活)이 필요한 시기이고, 더욱 중요한 것은 정년퇴임 이후를 준비하는 시기로, 노년을 대비해 비상금 명목으로 목돈도 준비하고 노년에 매월 수입과 지출을 맞출 준비, 우정과 사랑, 취미생활, 살 곳은 어디로 할 것인지 두루두루 주도면밀(周到綿密)한 계획과 준비가 필요한 시기로, 더더욱 중요한 것은 부부간 거리 두기를 어떻게 해야 할지 심사숙고해 두어야 하는 중요한 시기였다. 부부간은 양날의 검()으로 종일 함께하면 좋은 점도 있지만 반드시 나쁜 점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노년에 생활비를 벌기 위해 같은 공간에서 온종일 함께하면 문제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돌이켜 보니 중·장년시절 직장에서 중간, 고위직에 있을 때 솔선수범하고 아랫사람들 세심히 챙겨주고, 신상필벌(信賞必罰:잘하면 상주고 잘못하면 벌줌)이 명확했고, 무엇보다도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청렴결백한 생활로 무사히 정년퇴임한 것, 지금 생각해 보아도 후회나 미련(未練) 없고, 내 자신이 대견스럽기까지 하다. 무엇을 더 바라고, 그 누가 부럽단 말인가? 한평생 마음먹은 대로, 목표한 것, 최선을 다한 대가(代價)로 모두 성취했으니 여한(餘恨)이 없다.

마무리 글: 누군가 말했던가? ‘사람은 추억을 먹고 산다고맞는 말이다. 노년은 더더욱 그렇다. 흐뭇하고 뿌듯하기도, 경우에 따라서는 반성도, 후회도 해본다. 그러나 좋았다면 추억이고, 나빴다면 경험이다.’ 사람은 음식을 잘 먹어야 하듯, 마음을 잘 먹어야 한다. 노년은 무엇보다도 마음 다스리기(달래기, 추스르기)가 최우선이다. 어쩌면 건강이나 인간관계(숫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중요)는 그다음이다. 마음이 무너지고, 건강도 무너지고, 돈도 무력(無力) 해지는 순간, 평범한 일상(日常)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게 된다. 노년에는 평범한 오늘 하루 일상을 잘 지내고 있는데, 최고의 행복을 느끼고 살아가야 한다.’는 말로, 이 글의 대미(大尾)를 장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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