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이 나치독재라는 세계적 오명(汚名:더러워진 이름, 손상된 명예)을 벗고 세계적 주도권(主導權) 국가로 탈바꿈할 수 있었던 것은 독일 정치가와 지식인들의 인문 과학적 소양(素養:평소에 닦아 놓은 교양) 때문이다.’ 미국의 정치학자 골드하겐의 말이다. 정곡(正鵠:과녁의 한 복판이 되는 점)을 찌르는 말이다. 독일은 세계적으로 알려진 철학자, 사상가들의 나라가 아닌가? 말하자면 인문학의 태두(泰斗:어떤 분야에서 가장 권위 있는 사람)가 한두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들이 있었기에 오늘날 독일이라는 나라가 폐허를 딛고 발전하고 국민들의 고매(高邁:인격이 뛰어난)한 의식 속에 자리 잡아, 밑거름이 되어 주된 성장의 자양분이 되었을 것이라는 것은 믿어 의심치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인문학(人文學)이란? 인문학(Humanities)은 ‘인간의 삶, 사고 또는 인간다움 등 인간의 근원 문제에 관해 탐구하는 학문, 한마디로 인간 탐구(探究:진리나 법칙들을 파고들어 깊이 연구함)’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인문학은 인간의 사상, 문화, 역사 그리고 언어 등을 다루는 학문으로, ‘삶의 원리’를 밝히는 학문인 셈이다. 인문학 및 인문정신문화의 진흥에 관한 법률 제3조 제1호에 인문이란 ‘인간과 인간의 근원문제 및 인간의 사상과 문화를 말한다.’라고 되어있다. 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은 인간을 둘러싼 사회계와 자연계의 현상에 대해 귀납적(歸納的)으로 접근하거나, 연역적(演繹的)으로, 보편적인 법칙에서 특정한 법칙을 유도하는 과학적 방법론을 추구하는 반면, 인문학은 인간의 본질에 대해 사변적(思辨的:순수하게 이론적)이고 비판적이며, 그리고 분석적으로 접근하여 인간 본질의 정수[精髓:본질을 이루는 핵(核) 알맹이]를 다루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으로, 인간의 ‘가치탐구’와 ‘표현활동’을 대상으로 한다. 급변화, 다변화하는 오늘날의 세상 속에서 인문학은, 비현실적이라고 곡해(曲解:사실과 어긋나게 잘 못 이해함) 받기도 한다. 그러나 인문학이야 말로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치는 ‘복잡한 문제를 꿰뚫어 보고, 미래를 통찰하는 강력하고도 현실적인 무기(武器)’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인문학의 하위개념이며 연구영역에 해당되는 학문은 문학, 철학, 역사학, 고전학, 언어학, 종교학, 신학, 비평, 예술사, 공연예술학까지 다양하고 광범위한데, 그 대표적인 분야가 어문, 사학, 철학[일명(一名) 문사철]으로 인문학이 알려주는 ‘살아가는 목적과 인간적인 삶, 그리고 그에 대한 해석’인데, 어문에 국문학과는 한국 문학이, 영문학과는 미국문학과 영국문학이 그밖에 어문학과들도 그 나라 문학이 있고, 사학과는 지난 과거가 있음에 오늘이 있고 과거를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 미래를 기약할 수 있으며, 철학의 철(哲) 자는 ‘밝음’의 의미이며, 영어단어 Philosophy의 philo는 ‘애호(愛好:사랑하고 즐김)’의 의미이고, sophy는 ‘지식이나 지혜의 체계’로 ‘세계나 인생에 대한 신념의 체계’이자 ‘개인의 세계관이나 인생관이 담겨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인문학은 사회과학이나 자연과학으로는 풀 수 없는 문제들을 해결해 줄 수 있다.
인문학의 필요성과 중요성은? 인문학은 통섭(統攝:전체를 도맡아 다스림)의 학문이다. 당면한 자연과학의 공해문제, 사회과학의 페미니즘(feminism:여성과 남성의 동등한 권리와 평등을 추구) 문제도 인문학을 통해 해결점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자랑스러운 다국적 기업이자 세계적 기업 모(某) 회장은 선친(先親)께서 ‘대학전공을 경영·경제는 평생 기업하면서 익힐 수 있으니 근간이 되는 인문학(사학)을 전공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이제는 기업이나 육영사업, 그 밖의 사업체 2세, 3세 후계자들에게 인문학전공 선택을 권장할 만한 사안이다, 그 이유는 다음 사항들이다. 첫째, 인문학은 사람공부를 하는 것이고, 사람이 바르게 살아가는 길을 찾게 해 준다. 둘째, 오늘날과 같은 지식사회에서 지식을 갖추는 것은 기본이고, 인문학을 통해 ‘나는 누구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고, 사람과 사람사이, 내 앞의 인연들은 나와 어떤 관계이며, 왜 소중히 여겨야 하는지’를 깨닫게 해 준다. 셋째, 사람과의 대화는 원심분리기와 같아 대화를 하지 못하면 상생(相生)할 수가 없다. 대화를 어떻게 이루어 낼 것인가가 중요하다. 대화가 잘 되면 모든 일이 순탄(順坦)하게 풀리게 된다. 그런데 우리는 상당히 소통부재 속에 살고 있다. 그래서 인문학이 필요한 것이다. 넷째, 과학 중의 과학이 인문과학이고,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기 때문에 인문학을 알게 되면 대 자연을 다 쓸 수도 있게 된다. 다섯째, 인문학의 힘(力)은 창의성, 비판적 사고능력, 문제해결 능력 그리고 리더십과 인력관리능력 등 종합적 성찰(省察)과 분석(分析), 그리고 사고능력을 함양(涵養)시킨다. 마지막으로,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인문교육은, 인성교육’이고, ‘인재를 키우는 교육이 곧, 인성교육’이기 때문에 인문학을 이 시대의 새로운 시각으로 보아야 하는 주된 이유이다. 「통섭의 식탁」을 쓴 생물학자 최재천 교수님은 인문학의 중요성을 강조한 대목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스티브잡스는 ‘휴대폰에 인문학을 끌어드린 선구자’라고 평가했다. 자연과학만 고수하면 앞으로는 굶어 죽는다는 것이다. ‘사회가 날로 고령화되어가면서 100세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오늘날 세대들은 평생 동안 여러 개의 직업을 가지려면 인문학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경제적인 면에서 부자들은 평소 인문학을 배우고 중요시하며, 세계적인 기업가들은 대체로 독서광이고, 최고 수준의 인문, 고전, 철학서적의 독서가들이며, 우리나라의 자랑스러운 세계적 기업 중 한 곳에서는 임원任員)들에게 ‘논어’ 강의를 듣고 학습하게 하여, 경영에 ‘인문학을 도입, 접목(椄木) 시키고 있다’고 한다.
전공하지 않은 사람들의 ‘인문학 공부방법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의 세상은 복잡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필수이다. 그것이 바로 생각하는 방식 자체를 훈련시켜 주는 것이 인문학인 것이다. 인문학은 사회문제를 해결해 주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데 크나큰 역할을 한다. 나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과의 공감(共感:남의 감정, 의견, 주장 따위에 자신도 그렇다고 느낌) 능력을 향상시키는데 이바지한다. 이거야 말로 사회생활에서 돈으로는 살 수 없는 큰 무형의 자산이다. 인문학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지혜, 첫째는 자아(自我:나)의 이해, 둘째는 타인에 대한 공감 및 이해, 셋째는 비판적 사고와 통찰력(通察力:사물을 환히 꿰뚫어 보는 능력), 마지막으로 문제 해결 능력을 함양(涵養:기르고 닦음)시키게 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첫째, 다양한 장르나 분야의 ‘독서’하기 둘째, 일상에서 자신을 뒤돌아보고 자문(自問)도 해보는 ‘사색, 명상(冥想)’하기 셋째, 다양한 ‘사람들과 대화’하기 넷째, 일상의 경험들을 ‘인문학적으로 해석’하기 [경험을 통해 얻은 교훈, 감정, 그리고 경험이 삶에 미친 영향을 깊이 있게 성찰(省察:반성하고 살핌)해 ‘글’로 표현하거나 ‘스토리텔링’화(化)하기] 마지막으로,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기다림의 미학(美學), 그리고 새로운 나를 발견할 수 있는 ‘여행’하기인데, 그중 ‘핵심어’는 바로 자발적인 ‘독서’, 그것도 ‘다독(多讀), 책 많이 읽는 것’이다.
이렇게 필요하고 중요한 인문학이 오늘날 위기(危機)를 맞고 있는 이유는?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물질문명이 인류역사상 최고도(最高度)로 발전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물질문명만을 중시(重視)하다 보니 정신문화가 날로 그 가치가 떨어져 가고 있기 때문이다. 보이는 것이 우선이고 보이지 않는 것은 그만큼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학령인구가 날로 줄어가고 대학들이 정원을 채우지 못하고 벚꽃 지는 순서대로 없어진다는 우려와 현실 속에, 대학역량평가라는 국가시책(國家施策)에 따라 인문학이 통폐합되거나 아니면 전혀 다른 이름으로 학과가 재편성되는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한마디로 상위권 대학 일부를 제외하고는 평가위원들은 인문학과를 없앨 것을 권장하고 있으며, 환골탈태(換骨脫胎)하는 대학에 재정지원을 정부가 나서고 있어 실제 대학들이 생존의 일환으로 그리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마디로 오늘날의 인문학의 위기는 인문학에 대한 사회적 관심의 감소, 대학지원자 수의 감소, 정책적 지원 감소 등 복합적 요인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좀 더 현실적으로 지적한다면, 과거에는 대학의 중심이던 인문학은 오늘날에는 돈 안 되고 취업하기 어려운 전공으로 분류되어 ‘교양으로나 공부하면 좋지 않나’라는 사고방식이 ‘저변(底邊)에 깔려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인문학의 위기’가 도래(到來)하게 된 주된 원인은 인문학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사회적 몰이해(沒理解)가 지목(指目:어떻다고 가리켜 정함)되기도 하지만, 순수학문을 고수(固守)한다는 명분(名分:표면상의 이유, 명목) 아래 외부의 변화에 둔감(鈍感)하고 안이(安易)했던 대학내부의 문제를 지적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는 점을 외면(外面)해서는 결코 안 될 것이다.
철학자 황필호 교수님은 “인문학의 위기를 타개하는 대(大) 원칙은 ‘인문학이 다시 삶의 현장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것이고. 그리고 “문학은 ‘현실문학’이 되고 철학은 ‘생활철학’이 되어야 한다.”고도 말하며. “인문과학은 우리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뿐만 아니라 돈벌이와 같은 양의 측면에서도 가장 늦게 나타나지만 가장 큰 효과를 생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정부정책당국, 대학, 그리고 교수, 학자들이 지금의 체제와 학과목, 교수방법을 과감히 버리고 완전히 새로운 ‘대안(代案)’을 계속 협동하여 ‘창출(創出)’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인문학이 아닌 타 전공,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강수돌 명예교수님의 글 ‘인문학을 바라보는 시각’ 일부를 인용한다. “우리는 인문학으로만 살아갈 수가 없다. 집을 짓거나 옷을 만들거나 식량을 생산하는 것과 연관된 기술도 배워야 한다. 사람의 몸과 마음, 사회, 자연, 의학, 전기, 에너지, 그 밖의 기술 등 지식도 있어야 한다. 나아가 자연과의 관계에서도 자연을 해치지 않으면서 인간이 유익하게 사용하는 법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아무리 지식이나 기술을 많이 알아도, 그 지식이나 기술을 사람이나 자연에게 해로운 방향으로 사용한다면 모든 것이 ‘헛일’이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지혜’이다. 그래서 우리가 제대로 된 인격체가 되려면 지식, 기술, 지혜를 두루 섭렵(涉獵:여기저기 찾아다니며 여러 가지를 경험) 해야 한다. 바로 이 ‘지혜’에 관한 공부가 ‘인문학의 핵심(point)’이다.” 기성세대들은 어렴풋이 기억이 날 것이다. 70년대 이전까지는 남성양복이 대개는 개인 맞춤형이었지만, 그 이후는 기성복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당시 어느 남성 기성복 브랜드 광고 카피에 ‘결론은 버킹검’이라는 말을, 이 글에 최종 적용하면, 지금의 IT시대뿐만 아니라 미래의 AI시대에도, ‘결론은 인문학’이라는 것이다.
끝으로 질문하나를 던진다. 당신의 인생 궁극적(窮極的) 목표는 무엇인가? 물론 사람들 저마다의 가치 기준에 따라 답(答)은 다를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행복’이라고들 말할 것이다. 우리가 행복이라는 목표를 위해서, 공부도 하고, 돈도 벌고, 출세도 해서 성공하려고 하지 않는가? 인문학적 소양(素養)이 없는 사람은, 죽자 살자 고생, 고생해서 얻은 ‘성공도 행복한 삶으로 연결시킬 수 없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행복한 삶을 위한 공부’, 이것이 바로 이 시대 ‘인문학이 필요한 이유’라는 말로, 글의 대미(大尾)를 장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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