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경기농진회 녹지회원들의 모임이 있었다. 前 경기지역 농촌진흥기관장 출신 모임인 녹지회(회장 김완수)는 걷기운동과 친목을 위해 희망자들이 매월 두 번째 금요일에 모임을 진행한다. 이날 모임은 오전에 서호 주변과 舊 농촌진흥청을 둘러보고 오후에는 인근 채상궁 식당에서 연말 총회도 함께 개최하였다. 이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화성병점역에서 1호선 전철을 타고 사전 약속된 화서역 5번 출구에 오전 11시 전에 도착하였다. 서울과 인천, 고양, 성남, 수원, 화성 등에서 반가운 얼굴들 11명이 모두 모였다. 우선 서호 주변을 돌기로 한참을 가니 제방 수문 위에 출입통제선이 쳐져 있다. 조류독감 AI 바이러스가 검출돼 출입을 통제한단다. 일행은 서호 주변 돌기를 중단하고 舊 농촌진흥청으로 향했다.
○ 우리나라 농촌진흥청의 전신이었던 권업모범장(勸業模範場) 표지석(경계석)을 보았다.
권업모범장은 1906년 4월25일 농업구조의 개편과 일본식 농업의 이식을 강제하기 위해 통감부 산하에 설치됐다. 1907년 4월 1일 대한제국 정부로 이양되었으나, 강제합병 직후인 1910년 10월1일 다시 조선총독부로 소속이 바뀌었다. 1929년 9월17일 조선총독부 농사시험장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농사개량이라고 선전하였으나 일본 품종의 보급을 목표로 접합성 시험에 주력하였으며, 1920년대 이후에는 증산을 위한 종자개량 등 기술개발로 식민지 농업정책의 첨병 역할을 수행했다. 권업모범장 경계석의 제작 시기는 1910년에서 1929년 사이로 추정된다. 경계석 앞면에는 <勸業模範場>이, 뒷면에는 <72>라 새겨져 있다. 표석의 크기가 작고 일련번호가 있어 권업모범장 외곽의 경계를 표시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 경계석은 1990년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에서 논농사 시험장을 만들 때 여자잠업강습소(女子蠶業講習所) 표지석과 함께 출토되었다고 한다.
통감부는 일본의 주요 수출품이던 생사(生絲, 누에고치실)를 수탈하기 위해 양잠을 적극 장려하였다. 1906년 수원에 권업모범장을 설립하고, 전국 34개소에 잠업전습소를 개설하여 잠업기술교육을 하였으며, 1908년부터는 각 지방에 종묘장을 설치하여 뽕나무 묘목과 누에 종자를 보급하였다. 한편 친일 성향의 대한부인회는 1906년 권업모범장 용산시험장에 잠업전습소를 병설하여 양잠 제사 기술을 가르쳤다. 1910년 2월 여자잠업강습소 관제와 규칙이 제정돼 관립(官立)으로 바뀐 뒤에는 강습생을 기숙사에 수용하고 학비까지 지급하였으며, 8개월의 교육과정을 이수하면 전국 각지에 파견해 농촌부녀자들에게 양잠기술을 가르치게 하였다. 조선총독부 훈령에 따라 누에종자 보급과 잠업기술자 양성을 목적으로 1914년 4월 수원권업모범장 산하에 원잠종제조소(原蠶種製造所)를 설치하였으며, 용산의 여자잠업강습소도 11월에 수원으로 이전하였다. 원잠종제조소는 1917년 6월 잠업시험소로 개편되었으며, 1929년 1월 다시 농사시험장 잠사부로 변경되었다. 1917년에서 1929년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표지석은 변형된 마름모꼴이며 왼쪽 경사면에 권업모범장(勸業模範場), 오른쪽 경사면에 여자잠업강습소(女子蠶業講習所)가 새겨져 있다. 1990년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에서 논농사 시험장을 만들 때 권업모범장 경계석과 함께 출토되었다고 한다. 舊 농촌진흥청 부지 내에 있는 농업박물관과 함께 우리나라 농촌진흥사업의 역사를 되돌아보며 배울 수 있는 좋은 곳이다.
○ 일행은 녹색혁명성취탑(綠色革命成就塔)으로 이동하였다.
1978년 5월10일 건립된 이 탑은 1977년 쌀 4000만 석(4172만 석) 돌파와 1978년 쌀 자급 달성을 기념해 1978년 5월10일 수원 농촌진흥청 경내에 세워진 기념탑이다. 제막탑과 기념석 안내판에 적힌 내용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이 탑은 한국농업의 식량증산 혁명 성과를 기리기 위해 건립되었으며 박정희 대통령의 휘호로 녹색혁명 달성(綠色革命成就)을 남긴 바 있다. 그래서 주곡 달성을 이룬 녹색혁명(綠色革命)이라 부르고 있다. 당시 현장에서 이 운동에 참여했던 기억들이 생생하다.
역사적 배경은 통일벼 등 신품종 보급과 농업기술 혁신이 주된 원인으로 불과 10여 년 만에 쌀 자급을 이뤘다. 기념탑 하단에는 1977년 12월 9일 ‘전국 새마을지도자대회’ 유시 중에 말씀하신 글이 적혀 있다.
원문을 보면 “금년에는 단보당 수확면에서 평균 494kg의 세계 최고 기록을 세웠습니다. 우리가 남의 원조에 의존해 매년 많은 외화를 주고 쌀을 수입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그리고 세계적으로 식량난이 가중되고 있는 이때에 이미 주곡의 자급을 실현하고 이제는 쌀이 남아돌아서 걱정을 하게끔 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기쁘고 자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쌀을 절약하기 위해 떡을 만드는 데도 잡곡을 섞고, 쌀로 술을 빚지 못하게 하는 등 허리띠를 졸라매고 식성을 달래가며 꾸준히 노력해 왔는데, 그런지 불과 몇 년 만에 이제는 쌀을 먹고 남을 만큼 되었으니 이야말로 '하면 된다', '우리도 잘 살 수 있다'는 새마을운동의 행동철학을 입증한 것입니다.”
-박정희 대통령 유시 중에서(1977년 12월9일 전국 새마을지도자대회)-
탑 뒷면에는 당시 농수산부 장관 장덕진과 농촌진흥청장 김인환에 의해 제막되었다고 적혀 있다. 녹색혁명성취탑 제막 경위의 주요내용은 1964년 3월13일 농촌진흥청 대강당에서 박정희 대통령의 식량증산 연찬대회 유시에서 “우리나라 녹색혁명의 시작”에서 비롯되었다는 내용이다. 녹색혁명성취(綠色革命成就) 휘호는 1977년 쌀 생산 4천만 석 돌파를 기념해 그해 12월20일 휘호 내림. 쌀 자급 업적을 치하하는 특별시상을 받은 14명이 뜻을 모아 약 1억원으로 1978년 5월10일 농수산부 장관과 농촌진흥청장에 의해 제작되었다고 적혀 있다.
전직 경기·인천 농촌진흥기관장 OB모임인 녹지회는 매달 두 번째 금요일에 건강과 친목을 다지는 모임이다. 이날도 구순을 넘기신 두 분을 포함해 녹색혁명을 현장에서 지도하셨던 분들이기에 감회가 더욱 새롭다. 총회 마무리 말씀에서 함께하셨던 前 안성군농업기술센터 소장이셨던 이석우 회원님께서 “2025년 녹지회 12월 모임은 우리 친정을 찾아보며 녹색혁명의 주역으로 활동하던 당시를 되돌아볼 수 있어 매우 뜻깊었다”는 말로 이날의 의미를 새기며 내년에도 건강한 모습으로 이 모임을 지속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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