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故 이어령 교수의 작품인 '한국인 이야기' 시리즈 중 '너 어디로 가니?'란 책을 읽었다. 식민지 교실에서 울려 퍼지던 풍금소리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한국문화와 일본 문화를 비교하여 12고개 주제어로 풀어낸 책이다. 이 중에서 농업을 전공으로 하는 나에게는 민들레 9덕을 풀어쓴 포공구덕 내용이 흥미를 끈다.
그런데 지난 23일에 화성 태안도서관을 가면서 입동과 소설이 지난 시기에도 길가에서 노란 민들레꽃을 보며 질긴 생명을 기억하게 되었다. '포공구덕(蒲公九德)'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민들레(포공영, 蒲公英)가 가진 아홉 가지 덕목을 의미하는 말이다. 예로부터 민들레는 밟혀도 다시 일어나는 강인한 생명력과 사람에게 유익함을 주는 성질 때문에, 단순한 잡초가 아니라 배울 점이 많은 식물이다. 그래서 옛 선조들은 서당의 뜰에 민들레를 심어 두고 학생들이 그 성품을 본받게 했다고 한다. 이에 전해 내려오는 9가지 덕을 살펴보자.
먼저 민들레를 상징하는 인(忍, 참을성)으로 사람들이 밟고 다녀도 죽지 않고 기어이 살아나는 끈질긴 인내심이 있다. 두 번째 덕으로 강(剛, 강인함)으로 뿌리를 자르거나 캐내어 며칠을 말려 두어도 흙에 심으면 다시 싹이 돋는 강인한 생명력이 있다. 세 번째 덕은 예(禮, 예의)로, 꽃이 질서 있게 피고 지며 아침에 피었다가 해가 지면 오므리는 명확함이 있어 예의를 안다.
네 번째 덕은 용(用, 쓰임)으로 잎, 줄기, 뿌리 어느 하나 버릴 것 없이 나물이나 약재로 쓰여 사람에게 유익함을 준다. 다섯 번째로는 정(情, 정)으로 꽃에 꿀이 많아 벌과 나비에게 아낌없이 나누어 주는 정이 있다. 여섯 번째 덕은 자(慈, 자비)로 줄기나 잎을 자르면 나오는 흰 젖(진액)은 어머니의 모유처럼 사람의 몸을 치유하는 약성이 있어 자비롭다.
일곱 번째 덕은 효(孝, 효도)로 흰 머리카락(관모)을 이고 있는 씨앗들이 바람을 타고 멀리 날아가 자리를 잡고 부모 곁을 떠나 자수성가하니 효심이 깊다. 여덟 번째는 인(仁, 어짊)으로 자신을 태워 거름이 되거나 다른 생명의 먹이가 되어 주니 살신성인의 어짐이 있다. 끝으로 아홉 번째 덕은 용(勇, 용기)으로 씨앗이 바람을 타고 수십 리, 수백 리 낯선 곳으로 두려움 없이 날아가 뿌리를 내리는 용기가 있다.
포공구덕은 겉보기에는 작고 하찮아 보이는 민들레지만, 그 안에는 강인한 생명력, 헌신, 용기, 그리고 남을 이롭게 하는 정신이 깃들어 있음을 보여준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꿋꿋하게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는 삶의 태도를 비유할 때 자주 인용된다. 민들레에 이어 불교와 유교 문화권에서 매우 귀하게 여겼던 연꽃의 10가지 덕과 대나무의 5가지 덕, 국화의 4가지 덕도 전해 내려온다. 연꽃의 열 가지 덕(연화십덕, 蓮花十德)이 전해져 온다. 진흙 속에 피지만 더러워지지 않는 처염상정(處染常淨)이라는 속성을 가지고 있는 식물이다.
첫 번째 특징은 이제(離諸) 염오(離諸染汚)로, 진흙탕에서 자라지만 진흙에 물들지 않는 순수함이 있다. 두 번째는 불여악구(不與惡俱)로 잎 위에는 물방울이 맺히지 않고 굴러 떨어진다. 나쁜 것(악)이 머물지 않게 하는 결벽, 단호함이 있다. 세 번째로 계향충만(戒香充滿)으로 핀 곳의 물은 더럽혀도 꽃의 향기는 맑고 그윽하여 주변을 정화하는 선한 영향력이다. 네 번째는 본체청정(本體淸淨)으로 꽃과 줄기, 잎이 모두 청정하여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을 맑게 하는 맑은 본질이 있다.
다섯 번째는 면상희이(面相喜怡): 잎과 꽃의 모양이 둥글고 부드러워, 보는 이의 마음을 기쁘고 온화하게 하는 유연함과 미소가 있다. 여섯 번째는 유연불삽(柔軟不澁)으로 줄기는 부드럽고 유연하여 바람에 부러지지 않는 융통성이다. 일곱 번째는 견자개길(見者皆吉)로 연꽃을 꿈에 보거나 실제로 보면 길한 일이 생긴다고 믿는 행운의 여신이다. 여덟 번째는 개부구족(開敷具足)으로 꽃이 피고 지는 과정이 명확하고 필 때 난잡하지 않아 질서가 있다.
아홉 번째 특징은 성숙청정(成熟淸淨)이라고 하여 꽃이 활짝 피었을 때 그 색과 자태가 가장 맑고 아름다워 완성미를 갖춘 꽃이다. 끝으로 열 번째 특성은 생이유상(生已有想)이라 하여 꽃이 핌과 동시에 열매(연밥)가 그 안에 자리를 잡는다. 즉 원인과 결과가 함께한다는 결실 특성을 가지고 있다.
끝으로 가을을 상징하는 국화 또한 네 가지 덕(국화사덕, 菊花四德)이 있다. 다른 꽃들이 다 지고 난 늦가을에 늦게 피는 것은 인내를 상징하고, 황금색 꽃술은 땅의 색을 닮아 고귀한 색은 품위를 나타내며, 은은한 향기가 쉽게 사라지지 않고 오래 가는 향기는 신중함을 나타내는 것이고, 꽃이 시들어도 꽃잎이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고 줄기에 매달려 말라가니 끝까지 지지 않는 기개는 자존심을 상징한다.
민들레, 연꽃, 대나무, 국화 등 식물들의 덕을 요약하면 민들레(9덕)는 서민적이고 강인한 생명력을 보여주며, 연꽃(10덕)은 주변을 정화하는 고결함과 맑음이 특징이고, 대나무(5덕)는 욕심을 비운 겸손과 곧은 절개를 상징하며, 국화(4덕)는 시련을 견디는 인내와 자존심을 나타낸다. 예부터 선조들이 식물(꽃)을 보고 배운 지혜가 현대인들에게도 매우 유익한 자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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