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박사의 생활의 발견] 기쁨과 슬픔

문재익 전 강남대 교수(문학박사)
문학박사 문재익(칼럼니스트)

기쁨의 사전적 정의는? ‘욕구가 충족되었을 때의 흐뭇하고 흡족한 마음이나 느낌’, ‘어떤 만족감에 의해 느끼는 즐겁고 흥겨운 감정, 또는 그러한 일의 의미로, 유의어에는 쓰임새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쓰이기도 하지만, (;즐거움이나 위안), 반가움, 열락(悅樂:기뻐하고 즐거워함), 환희(歡喜:즐겁고 기쁨), 환열(歡悅:환희), 흔열欣悅:즐거워하고 기뻐함), 희열(喜悅:기쁨과 즐거움)이 있고, 반의어가 슬픔이다. 그렇다면 기쁨(:기쁠 희)과 즐거움(:즐길 락) 그리고 쾌락(:쾌할 쾌 :즐길 락)과 환희(歡喜:환열)의 차이는? “기쁨은 욕구충족의 결과로 느끼는 행복으로 정신적·물질적 욕구가 충족되었을 때 또는 그것을 예상·상상할 때 느끼는 내적 만족감인 행복한 마음이고, 즐거움은 행위·상태에서 오는 흐뭇하고 행복한 느낌으로 외적, 감각적 만족감이며, 쾌락은 감각적, 일시적인 즐거움으로,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고, 더 큰 쾌락을 원하게 되는 쾌락 적응현상(자극이나 환경에 따라 감각, 신체, 생물의 반응이 변화하는 현상)’이 나타나며, 환희는 깊고 지속적인 긍정적 정서상태, 더 큰 만족감을 주게 되는 일시적이 아닌 인생전체의 의미를 느끼는 감정이다.” (), 누군가에게서 돈을 받는 것은 기쁜 것이고, 재회의 기쁨이나 배움의 기쁨도 있고, 도박은 하는 순간은 즐겁지만, 그 결과는 기쁘다고 할 수는 없으며, 이성과의 관계에서 오는 즉각적이고 일시적 만족은 쾌락이고, 마라톤을 완주(完走)하고 내 힘으로 무엇인가를 해내고, 이루었다는 것은 환희에 가까운 감정이다.

라이프 성경사전에서는 기쁨을 마음이 평화, 만족, 희망으로 차 있는 상태, 히브리어(이스라엘의 공용어)와 헬라어(고대 그리스어)에는 이십 여 종류의 원어들이 사용되고 있어, 성경에는 기쁨과 관련된 많은 교훈들이 언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기쁨에는 육체적인 기쁨(전도서), 일시적인 기쁨(마태복음), 어리석은 기쁨(잠언), 등 유한(有限:한도나 한계가 있음)한 기쁨도 있는 반면, 최후에 누릴 기쁨(사도행전), 장래에 얻을 기쁨(마태복음)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영적이고 영원한 기쁨도 있다. 전자들의 기쁨은 세상 모든 사람들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맛볼 수 있는 것들이지만, 후자들의 기쁨은 주 안에서 거듭난 하나님의 백성들만이 누릴 수 있는 기쁨이다. 이런 기쁨은 하나님의 속성이자(시편), 하나님께서 믿는 자에게 주시는 성령의 열매이다(갈라디아서)”라고 설명한다.

그래서 성서적 입장에서 기쁨은 좋은 것을 경험하거나 기대할 때 생기는 감정, 행복한 상태로, 성서에서 기쁨, 환희, 즐거움, 기쁨을 가리키는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단어들이 표현하는 의미에는 여러 가지 미묘한 차이가 있으며, 기쁨의 단계 혹은 정도에서 차이가 있다. 관련 동사들 중에도 내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것도 있고 기쁨을 표출(表出:겉으로 드러냄), 표현하는 것들도 있다. 그래서 기뻐하다, 즐거워하다, 크게 기뻐하다, 기뻐 외치다, 기뻐 () 뛰다등과 같이 다양하다.”고 설명한다. 성서 빌립보서에 나오는 주안에서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는 구절은 곧, ‘예수께서 주시는 기쁨은 상황과는 상관이 없는 기쁨으로, 복음(福音:기쁜 소식,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절대적으로 기쁜 것으로, 복음은 슬픔을 기쁨으로, 염려(念慮:앞일에 대한 걱정)를 평강[平康:평안(平安;걱정이나 탈이 없음)]으로 바꾸는 능력이다는 말인 것 같다.

달리 표현해서 기쁨에는 세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다른 사람과 차이 나고, 다름에서 오는 차별화의 기쁨으로 남들보다 잘났다는 영웅이나 스타가 되는 데서 오는 기쁨을 말하는 것이 있고, 다음으로 다른 사람과 나도 같다는 데에서 오는 연대감(連帶感:한 덩어리로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는 마음)이나 일체감(一體感:남과 하나가 어우러져 하나로 되는 감정)’으로, 다른 사람과 한 형제요 자매요, 나이나 피부색, 종교적·정치적 이념을 넘어 수많은 사람들과 내가 하나라는 데서 오는 기쁨이 있으며, 마지막으로 위로부터 오는 하나님의 성령과 은총으로 그리스도인들이라면, 가장 갈구(渴求:간절히 바라고 구함)하는 희열과 환희에 찬 기쁨이 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우월감에서 오는 기쁨이나 동질감에서 오는 기쁨, 신앙생활에서 오는 기쁨이 있겠지만, 그러나 관조(觀照:고요한 마음으로 사물이나 현상을 관찰하거나 비추어 봄)의 기쁨이야 말로 진정한 나의 내면의 기쁨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리고 다른 각도(角度:생각의 방향)에서 볼 때, 세상에는 또 다른 관점(觀點)의 기쁨이 있을 수 있다. 강렬하지만 잠시 후 없어지는 기쁨도 있을 수 있고, 잔잔하지만 오래오래 가는 기쁨도 있을 수 있을 수 있으며, 흔히 말하는 나누면 배가(倍加)되는 기쁨도 있을 수 있지만, 괜시레[‘괜시리는 비표준어, 아무 까닭이나 실속이 없이 객쩍은(행동이나, , 생각이 쓸데없고 싱거운)데가 있고, 공연스레] 나누었다가 질투심, 시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기쁨도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명사들의 관점(觀點:사물이나 현상을 관찰할 때, 그 사람이 보고 생각하는 태도나 방향 또는 처지)에서 바라본 기쁨에 대한 명언들을 살펴보면, ‘우리가 기뻐하고 행복할 때, 하는 일도 잘 되고 사람들도 우리 곁에 머물고 싶어 한다.’ 호주의 철학자. 베스트셀러작가 앤드류 매튜스의 말이고, ‘기쁨을 주는 사람만이 더 많은 기쁨을 즐길 수 있다.’ 프랑스 작가, 몬테크리스토 백작을 쓴 알렉산더 듀마의 말이고, ‘기쁘게 일하고, 해놓은 일을 기뻐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독일의 철학자 괴테의 말이다. 또한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해주는 사람도 그와 똑같은 기쁨을 누리는 법이다.’ 영국의 철학자, 법학자 제러미 벤담의 말이고, ‘슬픔은 혼자서 간직할 수가 있다. 그러나 기쁨이 충분한 가치를 얻으려면 기쁨은 누군가와 나누어 가져야 한다.’ 미국문학의 아버지 마크 트웨인의 말이며, ‘인생의 기쁨은 다른 사람들이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데 있다.’ 영국의 저널리스트, 경제학자 윌터 배젓의 말이다. 그런데 주목할 만한(관심을 갖고 주의 깊게 살핌) 명언으로는, 프랑스 극작가 P. 코르네유의 온전한 기쁨은 명예와 함께 온다.’는 말로, 이는 자신의 일에 충실하고, ‘의미 있는 일에 성취, 성공한 사람에게 참된 기쁨이 따른다.’는 말인 것 같다.

슬픔의 사전적 정의는? ‘슬픈 마음이나 느낌’, ‘정신적 고통이 지속되는 일’ ‘욕구의 억압에 따른 괴롭고 답답한 감정의 의미이고, 상실·불리함·절망·비탄·무력감·실망·비애와 관련된 정신적 고통으로, ‘울음과 함께 나타날 수 있으며, 슬픔은 미국 대학의 임상심리학 교수로, ‘감정과 표정의 관계에 대한 연구의 선구자(先驅者)라고 불렸던 폴 에크만이 행복, 노여움, 놀라움, 공포, 혐오와 함께 설명한 인간의 여섯 가지 기본감정 중 하나, 유의어에는 감상(感傷:하찮은 자극에도 쉽게 흔들려 마음이 상함), 비감(悲感:슬픈 느낌), 비애(悲哀:슬픔과 설움), 비탄(悲歎:몹시 슬프게 탄식함)이 있고 반의어가 기쁨이다. 이탈리아로카세카에서 태어나고 서방교회(로마 가톨릭교회)의 신학자이자 스콜라 철학(기독교 신학 기반) 자 토마스 아퀴나스가 말한 슬픔을 해소하는 방법다섯 가지에는, ‘첫째 재미있는 것을 즐긴다. 둘째 눈물을 흘리며 운다. 셋째 친구들의 위로(慰勞)를 받는다. 넷째 진리에 대해서 묵상(黙想:눈을 감고 마음속으로 생각하거나 기도함)한다. 마지막 목욕하고 푹 잔다.’가 있다. 모두 상식적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슬플 때 실행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것들이다.

슬픔에 대한 명사들의 명언들을 통해 삶의 교훈과 지혜를 얻어 보기로 하자. ‘슬픔은 찰나(刹那:지극히 짧은 시간, 바로 그때 순간)의 고뇌(苦惱:괴로워하고 번뇌함)이며, 슬픔에 빠지면 인생을 망친다.’ 영국의 작가, 정치가 벤자민 디즈레일의 말이고, ‘슬픔만큼 불쾌감을 주는 것은 없다. 초기의 슬픔은 위로해 주는 사람이 있지만, 슬픔이 만성화(慢性化)되면 조소(嘲笑:비웃음)를 받는데, 이는 당연한 일이다.’ 로마 제국 시대 정치사상가 세네카의 말이며, ‘슬픔이라는 감정은 지속(持續:오래 계속됨)되면 한(:억울하고 원통한 일이 풀리지 못하고 응어리져 맺힌 마음)이라는 감정을 낳게 된다. 슬픔이 지속되면 한은 급격이 커지게 되고, 그 극대화된 한은 고통, 분노, 증오보다 더 강하다.’ 라르 판도라의 아이들에 나오는 말이다. 또한 슬픔의 유일한 치유(治癒)는 행동이다.’ 영국의 철학자, 평론가 조지 헨리 루이스의 말이고, ‘마냥 슬픔에 잠긴다는 것은 위험한 짓이다. 용기를 앗아갈뿐더러, 회복하려는 의욕마저 잃게 하기 때문이다.’ 스위스 철학자, 작가 앙리 프레데릭 아미엘의 말이며, ‘슬픈 마음이여, 침착하고 탄식(歎息:한숨을 쉬며 한탄함)을 멈추어라. 구름 뒤엔 아직도 햇빛이 빛나고 있다.’ 미국 작가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우의 말이다.

기쁨과 슬픔을 희비(喜悲)라고 하며, 일희일비(一喜一悲)기쁜 일과 슬픈 일이 번갈아 일어나거나’, ‘한편으로는 기쁘고 한편으로는 슬프다는 의미이고 일희일비하지 마라상황마다 감정이 들쑥날쑥한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작은 일에 기쁨과 슬픔에 지나치게 흔들리지 말고 평정심(平靜心:평안, 고요한 마음)을 유지하라는 말이다. 그리고 인생은 희비극의 쌍곡선이다.’는 살아가다 보면 좋은 일도 있고 나쁜 일도 있어, 그 간극(間隙:)에서 종종 진리를 깨닫는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기쁨과 슬픔이 공존(共存:서로 도와서 함께 존재함)하거나 대비(對比:서로 맞대어 비교함)되는 명언들에는? ‘즐거움, 기쁨 속에서 즐거움이나 기쁨은 참다운 것이 아니다. 괴로움, 슬픔 속에서 즐거움, 기쁜 마음을 지녀야만 비로소 마음의 참 기틀을 얻었다 할 것이니라.’ 중국 명나라 말() 문인(文人) 홍자성이 쓴 채근담에 나오는 말이고, ‘기쁨을 타인과 나누면 두 배(:갑절, 곱절)가 되고, 슬픔이나 고뇌를 타인과 나누면 절반이 된다.’ 독일의 시인 C.A. 티트게의 말이며, ‘기쁨의 전조(前兆:미리 나타나 보이는 조짐, 징조)가 되는 슬픔이 차라리 슬픔에 딸려오는 기쁨보다는 훨씬 반가운 것이다.’ 중세 페르시아의 실천도덕 시인 사디의 말이다. 또한 우리는 남의 기쁨에서 우리의 자신의 슬픔을 뽑아오고, 남의 슬픔에서 우리의 기쁨을 얻어온다.’ 영국 작가 O. 펠덤의 말이고, ‘인간은 기쁨도 슬픔도 맛보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를 올바르게 알고 있을 때, 우리는 세상을 안전하게 살아간다.’ 영국의 시인이자 화가 윌리엄 브레이크의 말이며, ‘기쁨으로 말미암은 행복감은 몸에 좋다. 그러나 인간의 정신력이 키워지는 것은 바로 깊은 슬픔의 체험을 통해서이다.’ 프랑스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말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눈물 젖은 빵을 먹어봐야 참다운 인생을 안다는 말인 것 같다.

끝으로, 우리 인간들이 일상에서 함께하는 기쁨과 슬픔에 대해 어떤 시각(視覺)으로 보고 받아들여야 할지, ‘올바른 길이자 지혜를 알려주는 영국의 평론가, 역사가 토머스 칼라일의 말을 인용하는 것으로, 글을 맺으려 한다. “인생이란 기쁨도 슬픔도 아니며, 다만 두 가지를 지향(指向:지정한 방향으로 나아감)하고 종합해 나가는 과정에서 파악되어야 할 것이다. 커다란 기쁨도 커다란 슬픔을 불러올 것이며, 또 깊은 슬픔은 깊은 기쁨으로 통()하고 있다. 자신의 할 일을 발견하고 자신의 하는 일에 신념을 가진 사람은 행복하다. 돈 있는 사람은 자진(自進:스스로 나섬)해서 돈의 노예가 될 뿐이다. 사람의 가치는 물론 진리를 척도(尺度:판단 기준)로 하지만, 그러나 그가 갖고 있는 진리보다는, 그 진리를 찾기 위해서 맛본 고난이나 슬픔에 의해서 개선(改善)되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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