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박사의 생활의 발견] 믿음의 기적

문재익 전 강남대 교수(문학박사)
문학박사 문재익(칼럼니스트)

*믿음의 기적! 이 글은 요즘 SNS를 통해 회자(膾炙)되고 있는 아프리카 청년 엔퀘인 케네디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농구공조차 없는 열악한 환경에서 시작했지만, 주변의 불신과 조롱에도 굴하지 않고 오직 자신에 대한 믿음과 열정으로, 타이어로 혼자 4년 동안 훈련하던 그가 마침내 NBA출신 선수의 미국 초청을 받아 현재 체계적으로 훈련을 받고 있다고 한다. 그의 굳은 신념이 결국 기회를 만들었듯, ‘간절한 열정과 자기 확신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기적을 낳는다.’는 교훈을 우리에게 주는 것으로, 시사(示唆)하는 바 크다. -인터넷으로 그의 각고(刻苦)의 훈련 모습을 볼 수 있다-

믿음의 사전적 정의는? ‘어떤 사실이나 사람을 믿는 마음’, ‘초자연적인 절대자, 창조자 및 종교대상에 대한 신()과 자신의 태도로서, 두려워하고 경건히 여기는 마음으로 믿음을 가지다’, ‘믿음을 저버리다.’ ‘믿음성이 있다(미쁘다)’로 쓰이며. 조금씩 차이가 있긴 하지만, 유의어에는 신뢰(信賴:굳게 믿고 의지함), 신의(信義:믿음과 의리), 신임(信任:믿고 일을 맡김, 또는 그 믿음), 신념(信念:굳게 믿는 마음), 신용(信用:틀림없다고 믿어 의심치 않음), 소신(所信:굳게 믿거나 생각하는 바), 확신(確信:굳게 믿음), 철학(哲學:자기 자신의 경험 등에서 얻은 기본적인 생각), 신심(信心:옳다고 믿는 마음, 종교를 믿는 마음), 신앙(信仰), 종교(宗敎)가 있고, 반의어는 불신(不信)이나 의심(疑心)이다. 일반적으로는 믿음이나 신뢰’, 철학에서는 신념’, 그리고 종교에서는 신앙, 신심으로 쓰인다. 믿음과 신뢰의 차이는? 대체로 믿음은 배신(背信)에 대한 두려움을 동반하고, 신뢰는 신용과 리스크(risk:위험) 관리의 맥락(脈絡:서로 이어져 잇는 관계나 연관)에서 쓰인다. 그리고 종교적 관점으로, 기독교에서 믿음은 하나님의 주권(主權:가장 중요한 권리)과 은혜에 속하는 것으로, 불가(佛家)에서는 선한 마음(善心)과 함께 일어나는 마음 작용으로, 마음을 맑고 깨끗하게 하여 열반[涅槃:모든 번뇌(煩惱:마음이 시달려 괴로움)에서 벗어나 영원한 진리를 깨닫는 경지]에 이르는 첫걸음이 되는 중요한 요소에 속한다.’고 한다.

믿음에 대한 성어(成語)에는 지일가기(指日可期:머지않은 날에 일이 이루어질 것을 믿음), 붕우유신(朋友有信:삼강오륜 중 오륜의 하나로, 벗과 벗 사이의 도리는 믿음에 있음), 효제충신(孝悌忠信:어버이에 대한 효도, 형제끼리의 우애, 임금에 대한 충성과 친구사이의 믿음을 통틀어 말함)이 있고, 속담으로는 노루 꼬리가 길면 얼마나 길까(하찮은 재주를 지나치게 믿음을 비웃는 말), 제 침 발라 꼰 새끼[사내끼(전라도 사투리):짚으로 꼰 줄]가 제일이다(손바닥에 침을 발라가며 자신이 직접 꼰 새끼가 자신의 마음에 든다는 의미로, 자신이 직접 힘들여한 일이 제일 믿음직함을 비유적으로 말함), 의붓자식 소 팔러 보낸 것 같다(믿음성이 없어 마음이 안 놓임을 비유적으로 말함)가 있으며, 명사들의 명언들로는, ‘당신이 진정으로 믿는 일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그 믿음이 그것을 실현시킨다.’ 미국의 근대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말이고, ‘믿음은 선의의 거짓이 아닌 사실에 근거해야 한다. 사실에 근거하지 않는 믿음은 저주받아 마땅한 헛된 희망이다.’ 미국의 발명왕 토마스 A. 에디슨의 말이며, ‘네 믿음은 네 생각이 된다. 네 생각은 네 말이 된다. 네 말은 네 행동이 된다. 네 행동은 네 습관이 된다. 네 습관은 네 가치가 된다. 네 가치는 네 운명이 된다.’는 인도의 정치가 마하트마 간디의 말이다. 이 세 인용 명언들이야말로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믿음이 기적을 낳을 수 있는 경우들이 아닌가 싶다. 또한 가장 울림을 주며, 좌우명(座右銘)으로 삼을 만한 명언으로, ‘믿음은 우리가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이다.’ () 육군 조지 S. 패튼 장군의 말이고, ‘삶은 살아 볼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믿어라. 그 믿음이 가치 있는 삶을 창조하도록 도와줄 것이다.’ 미국의 목사 로버트 슐러의 말이며, ‘스스로를 믿고 신뢰하는 순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깨닫게 된다.’ 독일 철학자 괴테의 말이다.

신앙믿고 받드는 일’, ‘초자연적인 절대자, 창조자 및 종교대상에 대한 신()과 자신의 태도로서 두려워하고 경건하게 여기며 자비, 사랑, 의뢰심을 갖는 일신앙()이 강하다/믿음이 좋다’, ‘신앙()이 약하다/믿음이 약하다로 쓰이며, 유의어로는 숭배, 신교(信敎:종교를 믿음), 믿음이 있는데, 영어 단어로 보면 구분이 명확하다. 믿음은 ‘belief’[동사 believe의 명사형/believe는 타동사로 (사실을 믿다), believe in은 자동사로 (존재 가치를 믿다). () 나는 그의 말을 믿는다( I ‘believe’ what he says.) 나는 예수그리스도를 믿는다( I ‘believe in’ Jesus Christ.)이고, 신앙은 faith, ‘religious belief(종교의, 독실한 믿음)’이다. 한마디로 믿음은 모든 일반(), 종교적의미이지만, 신앙은 대개 종교적 믿음에 한정한다. 성경 로마서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한 대표적 세 구절을 인용하면, ‘믿음은 약속하신 분을 신뢰하는 것이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약속을 보이는 현실보다 확실히 여기는 것이다.’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시기에, 믿음은 결코 헛되지 않다.’ 그러기에 목회자들의 설교제목 중 하나가 종종 믿음의 기적에 대한 이야기인 것 같다.

믿음에 대한 몇몇 형태 중, 맨 먼저 자신에 대한 믿음, 장래에 대한 믿음, 확신, 그것은 자신감이기도 하다. 자신감은 곧 믿음의 기적을 낳을 수 있다. 비록 지금은 빈곤하고 처지(處地;처하여 있는 사정, 형편)가 보잘것없다 해도, 남 못지않게 잘 살 수 있고 성공할 수 있다는 확고한 믿음으로, 뜻하고 있는 일에 온 정성을 다 하면 자신의 미래를 보상받을 수 있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 ‘자기 신뢰는 성공의 첫 번째 비결이다.’ 미국의 사상가 에머슨의 말이다. ‘자신이 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 자신감의 근본(根本)이 되는 것이다. 자신감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굳은 신념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그들의 도전에 맞설 때 필요한 용기와 동기를 제공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신념은 행동을 형성하여, 결국은 우리가 어떤 결과를 얻게 될지를 결정짓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에 대한 긍정적인 믿음은, 우리가 우리의 가능성을 실현하는데 필수적이다. 따라서 우리는 자신이 할 수 있다고 믿고, 이러한 믿음을 바탕으로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그렇게 되면 언젠가는 믿음에 대한 기적을 맛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믿음을 가진 1명은 흥미만 있는 99명과 맞먹는다.’ 영국의 철학자, 사회학자 존 스튜어트 밀의 말이다.

다음으로 믿음 중에는 인간관계에서 믿음인 신뢰가 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수많은 필요한 것 중에는 주고받아야 하는 인간관계에서의 믿음, 신뢰이다. 누군가를 신뢰하고, 누군가에게 신뢰를 받는다는 것은 중요하기도 하지만 어렵기도 하다. 가족 간, 특히 부부간, 나아가 친구 간, 직장동료나 상급자와 하급자 간, 기타 여러 부류의 인간관계에서 신뢰는 쌓기도 어렵고, 무너지기도 쉽다. 한번 무너진 신뢰는 회복하기는 쉽지 않다. 필요한 것은 시간과 경험이다. 오랜 시간 동안 믿을 수 있는 행동을 해야 신뢰성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루 이틀에 되는 일이 결코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나 오랜 시간 함께 지냈다고 신뢰할 수 있거나 신뢰받을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서로 믿고 살아야 하지만 세상은 가끔씩 신뢰가 깨지고 배신을 하기도, 당하기도 한다. 우리 속담에 믿는 도끼 발등 찍힌다.’라는 말에서 인간관계시 적당한 거리를 두는 것도 삶의 지혜중 하나인 것 같다. 사랑도 믿음이 있어야 싹이 돋고, 서로 오고 가는 것이다. 그런데 살아가면서 그 믿음이 깨지는 순간, 사랑도 떠나게 된다. 깨진 믿음은 회복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리거나, 아예 회복 불가능하기도 하다. 아무리 가깝고 좋은 관계라도 믿음이 깔려있지 않으면 그 관계는 아주 사소하고, 작은 일에도 금방 깨져버리는 법이다. 한 사람의 성공은 대인관계의 처세법 중 상대에게 믿음, 신뢰를 주거나 받는 것부터 시작이 된다. 한 인간의 실패의 80%는 인간관계의 실패 때문이다. 믿음을 줄 수 있는 언행, 작게는 시간 약속부터, 매사(每事) 철저하게 약속을 지키고, 신용을 생명처럼 여겨야 한다. ‘신의(信義:믿음과 의리)를 첫 번째 원칙으로 여겨라.’ 공자님 말씀이다.

마지막으로 인간은 나약한 존재이다. ‘누군가를 의지하고, 누군가에게 보호받고자한다. 그래서 위급하거나 어려울 때 조상님도 찾고, 하나님, 부처님도 찾게 되는 것이다. 인간은 살아서는 생일상을 받고, 죽어서는 제사상을 받게 된다. 제사는 일부 미신이라고 치부(恥部)하지만, 우리 조상 대대로 물려온 전통이자 문화유산이다. 종교적 절대자만 믿는 것이 신앙은 아니다. 조상님 섬김, 그리고 선영(先塋:선산)을 잘 돌보는 일도, ‘믿음이고 숭배(崇拜)’. 인간은 빈부귀천(貧富貴賤)을 떠나 나름대로의 자유권을 갖고 있다. 종교의 자유도 그중 하나다. 그러므로 내 믿음만이 진리이고 남의 믿음은 거짓이라는 독선(獨善)은 금물이다. 유불(儒佛)이든, 하나님이든 자신의 믿음이 가는 대로다. 돌이켜 보면, 우리 기성세대들의 어머님들은 새벽녘 아침밥 지으러 나가시면 맨 먼저 부엌에 정화수 떠놓고 조항신께, 그리스도인이면 예배당에서. 불자(佛子)이시면 불전 앞에 엎드려 자식들 잘 되기를 기도드린 덕분으로 우리 자식들이 지금까지 무탈하게 살아가고 있고, 사회에서 성공하고 중추적 역할도 하고 있는 것이다. 이 또한 믿음의 기적기도의 기적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믿음과 신앙이라는 말이 나왔으니 이단(異端)과 사이비(似而非)? 이단은 종교의 정통교의(敎義:어떤 종교에서 진리라고 믿는 가르침)에서 벗어난 교리, 주의, 주장 등의 조작(造作:어떤 일을 사실인양 꾸며 만듦, 진짜를 본떠 가짜를 만듦)을 총칭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기독교계통에서 더 많이 쓰이고 있는데, 특정 종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행복을 파괴하는 사악(邪惡)한 집단을 의미하는 것으로, 기독교에서 이단은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은근히 접근하여 기독교인을 해롭게 하는 것으로 여긴다. 사이비 종교는 이단과 비슷하지만 결()이 다른 것으로, 이단은 기존 종교 교리에서 다른 방향으로 해석하여 가르치는 것이라면, 사이비는 기존교리이든 변질된 교리이든 교리를 악용하여 이익을 얻으려는 것을 말하고 종교를 가장하여 종교라는 형태를 꾸미는 집단, ‘겉보기에는 종교 같아도 종교가 아니라는 의미이다.

한 인간이 살아가면서 삶의 지혜를 지녀야 할 수많은 것들 중 믿음의 세 가지, 먼저 우리의 삶이 비록 고단하다 할지라도 살맛나게 해 주는 것은 내 꿈이 현실이 되리라는 확고한 믿음이 있어야 하고, 다음으로, 사람들에게 믿음과 신뢰를 주는 것도 성격이며, 생활 습관으로 신뢰를 주고 그리고 신용을 지키는 일에 올인(all in)하는 생활자세와 습관이 필요하며, 마지막으로 특히 신앙의 믿음을 누구나 어떤 형태로든 갖고, 그곳에 의지하면 내 마음이 평안(平安)하고, 그리고 건실(健實)하고 모범적 정도(正道)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 근본(根本)이 될 뿐만 아니라 믿음의 기적, 기도의 기적인 성령의 역사가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간구(干求:바라고 구함)의 기도는 필수(必須:꼭 필요함). ‘기도는 특정한 신앙인들만 하는 것이 아니다. 종교가 궁극적인 관심을 지향(指向:지정한 방향으로 나아감)하는 것이라면 하느님, 부처님, 천지신명, 조상님 모두의 기도의 대상이다. 혼자 믿는 미신, 좋은 글귀나 그림이면 어떠하랴! 진심을 담아 간절히 기도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덴마크의 철학자 키르케고르의 말을 인용하는 것으로, 이 글의 대미(大尾)를 장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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