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은 생소(生疎:낯선)한 단어 ‘신독(愼獨)’이란, ‘홀로 있을 때에도 도리어 어그러짐이 없도록 몸가짐을 바로 하고 언행을 삼감’이 사전적 의미이다. 우리말 음은 같지만 한자가 다른 신독(身讀)은 불가(佛家)에서 ‘불교 경전을 단순히 입으로 읽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실행함’이고, 또 다른 하나 신독(身毒)은 ‘몸의 독’, ‘몸에 있는 독기(毒氣;독이 있는 기운)’을 의미한다. 이 글은 첫 번째 의미를 말하는 것으로, 70대 중반 홀로 살아가고 있는 한 노인의 견지(見地:입장, 관점)에서 조명(照明;일정한 관점에서 어떤 대상을 바라봄)한 글이라는 점을 먼저 밝힌다.
신독이라는 단어의 유래는? 원래 신독이란, 유교경전인 「대학(大學)」과 「중용(中庸)」에서 강조하는 덕목(德目)으로, 윤리 실천을 위한 기초 활동이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의 수신(修身)도 사실은 ‘신독’인 셈이다. 「중용」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길이란 잠시도 끊어지지 않는다. 이 때문에 군자(君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경계하고 조심하며,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곳에서 두려워하고 조심한다. 그러므로 군자는 혼자 있을 때 조심한다.’는 것으로, 자기 자신에게 부끄럼 없이 떳떳하기 위해 남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크고 작은 동작 하나하나)을 자신의 지향(指向:지정한 방향으로 나아감)에 맞게 행동하는 것이다. 자신만의 고유하고 독특한 삶은 남이 알지 못하지만, 무엇보다도 자신에게 떳떳하기 위해 자기 스스로를 책임지는 힘이 있어야 만 하는 것이다. 자신의 일상의 행동이나 마음 씀씀이는 두말할 나위도 없고, 자신이 세운 목표를 실천해 성취하기 위해서는 남이 보지 않을 때에도 쉼 없이 노력도 해야만 한다. 신독의 효과는 오로지 개인적 관리에만 머물지는 않는다. 합리적인 사고와 꾸준하고도 변함없는 실천에서 나오는 법으로, 갑작스러운 부당(不黨:이치에 맞지 않음)한 상황 하에서도 올바르게 처신(處身:몸가짐과 행동)할 수 있는 힘을 키워주게 되는 것이다. 삶에서 신독 할 줄 모르면, 하늘에서 복이 저절로 떨어지기를 바라고 기다리거나, 아니면 대개는 무리한 방법이나 부당한 일도 서슴지 않고 저지르기도 하는 것이다.
신독이란, ‘혼자 있을 때 삼가(몸가짐이나 언행을 조심)하는 것’으로 누군가 보지 않더라도 스스로를 돌아보고 경계하는 내면의 성찰(省察:자신의 마음을 반성하고 살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말은 바로 누군가 보지 않아도 스스로를 엄격하게 살펴야 하며, 진정한 인격과 도덕성은 그런 순간에 드러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특히 현업에서 은퇴 이후 노년에 신독을 어떻게 수행(遂行:실천)할 것인지는 일생일대 그 어느 시절에서 보다 더 중요한 것이다. 그렇다면 맨 먼저 신독이 필요한 이유는? 우리는 보통 일상에서 남을 의식하며 살아간다. 그렇지만 다른 사람의 시선이 사라지는 순간, 바로 혼자 있는 순간에 진정한 자신의 모습이 드러나는 법이다. 스스로를 점검하지 않으면, 방심과 나태함에 빠지기 쉽고, 도덕적 기준이나 인격이 흐려지고 흐트러질 수가 있는 것이다. 신독이란 혼자 있는 시간에 자신을 바라보는 엄격한 자세, 요샛말로 철저한 ‘자기 관리’인 것이다. 자신에게 솔직하고 책임지는 태도를 통해 내면의 성찰과 성장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무엇보다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는 일 이야말로 다른 사람과의 신뢰를 쌓는 초석(礎石:주춧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한 인간으로서 신독의 중요성은? 신독은 사회적 위치나 빈부의 차이에 상관없이 한 인간에게 필수 덕목(德目) 중 하나이다. 외적 평가나 평판이 아니더라도 자신을 성찰하고 삶의 방향과 가치를 점검하는 일은 한 인간의 인격형성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이다. 주도적 삶의 주인인 내가 되기 위해서는 내면의 기준을 확립하고 스스로를 엄격히 다스리는 신독은 절대 필요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은퇴 후 노년의 신독은? 무엇보다도 은퇴 후 노년은 사회적 역할과 외부평가에서 벗어나는 시기이다. 그러므로 스스로를 돌아보고, 내면의 평화와 자율성을 키우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바로 신독은 이를 가능하게 하는 마음가짐, 그리고 습관이 되는 것이다. 꾸준한 자기 점검과 성찰을 통해 은퇴 후 노년에 삶의 의미를 재발견하고. 존엄한 노년을 살아가는 힘을 기름으로 마음을 잃거나 놓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면의 빛도 잃지 않게 되는 것이다.
노년이 되면 지난날 살아온 만큼이나 수많은 회한(悔恨:뉘우치고 한탄함), 그리고 장차 다가올 미래, 특히 병마(病魔:병을 악마에 비유하는 말)와 죽음에 대한 불안이 머릿속에 가득하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이 모든 노년의 번뇌(煩惱:마음이 시달려 괴로움)를 다스리고 마음의 평화(平和)를 찾는 법은? 유배(流配:귀양)라는 절망적 상황에서도 ‘자신의 마음을 다스려 위대한 성취를 이룬 인물’인, 다산(茶山) 정약용 선생님[조선 정조대의 문신이자 실학(實學:현실 문제를 ‘제도·행정·법·노동·생업’의 관점에서 분석하고 개혁안을 제시한 학문적 접근)의 대가(大家:거장)]의 말씀을 인용하는 것으로 그 답(答)을 찾기로 하자. 다산의 사상 핵심 포인트는 첫째는, ‘신독(홀로 있을 때 삼가다)’이다. 노년에는 홀로의 시간이 많아 외로움에 함몰되어 부정적인 생각에 빠지지 않도록, 혼자 있는 시간을 고립(孤立:외따로 홀로 떨어짐) 이 아닌 자신을 직면(直面;직접 당하거나 접함)하는 시간으로 삼아 ‘자신과 대화하며, 내면의 소리에 집중할 때 번뇌(煩惱:마음이 시달려 괴로움)의 힘을 잃는다는 것’이다. 둘째는, ‘기록(記錄)’하는 것이다. 생각이 머릿속에 머물러 있으면 독(毒)이 되는 법이다. 그런데 그것을 글로 써 내려가면, 생각은 객체(客體:주체로부터 독립되어 있는 인간의 인식과 실천대상↔주체)가 되어 통제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생각을 글로 정리하는 것, ‘내 마음의 나쁜 것들을 배설함과 동시에 치유(治癒)하게 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경(敬)’이다. 경(敬)은 ‘공경하다’의 의미를 갖고, 더 넓게는 ‘삼가다’, ‘조심하다’, ‘정중하다’, ‘훈계하다’ 등으로 설명되고, 본래는 어른에 대한 ‘예의’를 상징하는 단어이다. 다산은 경(敬)의 자세를 강조했는데, 이 말인즉슨 ‘마음이 딴 대로 새지 않도록 붙잡아 두는 것’으로, 이 순간 자신이 하는 ‘한 가지 일에만 정성을 다하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밥을 먹을 때는 밥만 먹고, 길을 걸을 때는 바로 앞과 주변 경관(景觀:경치)만 보고, 무엇인가 일을 할 때는 ‘그 일에만 집중하라’는 것이다.
젊은 시절에는 불러보지 못한 노년의 찬가(讚歌:찬양·찬미의 뜻을 표하는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이유와 조건은? 첫째는, “노년이 되면 우리는 수많은 미친 폭군(욕망과 정욕)의 손아귀에서 해방되어 마침내 ‘자유와 평온’을 얻게 된다.” 고대 그리스 비극작가 소포클레스의 말로, ‘자유와 해방’은 노년찬가의 가장 중요한 덕목(德目)이다. 예를 들어 요새 주가(株價)가 3000에서 5000 이상이 가도 일확천금(一攫千金)에 대한 욕심이 전혀 없는 마음이고, 아무리 절세미인(絶世美人)을 봐도 그저 ‘예쁘다!’는 생각 외에는 아무런 느낌이 없다. 둘째는, 체력과 활동력의 저하로 ‘쾌락과 열정의 상실’은 노년찬가의 또 다른 하나이다. 셋째는, 조금은 뻔뻔함, 때로는 일탈(逸脫)하는 모습, ‘주변 눈치 안 보고 남의 이목(耳目:주의나 관심)에 신경 쓰지 않고 살아가는 것’도 노년찬가의 하나임에 틀림없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관계의 정리’로 노년찬가를 부를 수 있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나이 들어 새로운 관계 형성이나 유지보다는 기존 관계들 중심으로 정리해 가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평가받으려 애쓰지 않아도 되고, 억지로 만나 마음 상(傷)하고, 갈등하고, 분(憤)해하느니 멀리하는 게 낫다. 노년에는 안 쓰는 물건은 하나씩 정리해야 하듯, 인간관계도 아닌 사람은 과감(過感)하게 정리, 절연(絶緣:인연이나 관계를 끊음) 해야 한다. 그런데 그것은 과거에 가까웠고, 현재 가까운 사람도 예외가 되어서는 안 된다.
자! 그러면 노년의 신독한 생활을 위한 준비해야 할 것들에는? 무엇보다도 노년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젊은 날부터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 흔히들 말하는 유비무환(有備無患:미리 준비가 되어 있으면 근심할 것이 없음)이라고나 할까? 그래야만 신독한 노년을 살아가기 위한 만전(萬全)을 기할 수가 있는 것이다. 여기에 대표적인 것이 젊은 날 근검절약을 통한 ‘저축’, 그리고 ‘절제’의 삶이다. 한 마디로 노후를 대비한 ‘경제력’, 그리고 몸을 함부로 다루어 ‘건강’을 해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사실 노년에 빈곤하고 건강하지 못하면 모든 것이 무용지물(無用之物:쓸데없는 것)이다. 동시에 마음도 함께 무너지게 되어있다.
그렇다면 노년에 접어들 무렵 준비하고 결정해야 할 사항들은? 첫째 삶이라는 모험의 동반자인 친구는 누구와 어떻게 나눌 것인가? 둘째 주름살이 매력적일 수는 없다. 나이 들어가는 몸을 어떻게 대하고 가꿀 것 인가? 셋째 지난날을 돌이켜보며 과거를 통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미래를 후회대신 어떻게 만족한 삶을 살아갈 것인가? 넷째 통제권을 상실할 준비와 유산분배나 상속 그리고 돌봄 비용을 어떻게 마련하고 지불할 것인가? 다섯째 사랑은 누구와 나눌 것인가? 여섯째 인간의 역량(力量)이라는 관점에서 경제적인 면들은 어떻게 대처하고 해결할 것인가? 여섯째 나눔의 역설과 나름의 해결책으로 무엇을 남길 것인가? 일곱째 중병으로 생명이 위태로울 때 어느 선까지 의료도움이나 기계적 도움을 받을 것인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잇대 별로 신변정리는 무엇을 어떻게 하고, 무엇보다도 어떻게 죽음을 준비하고 맞이할 것인가? 그런데 여기서 현실적으로 이들 못지않게 중요한 것들이 있다. 먼저 도시와 시골 어디에서 살 것인가? 다음으로 누구와 살 것인가? 매우 이례적(異例的:특이한)이긴 하지만, 부모? 자식? 아니면 배우자와 살 것인가, 혼자 살 것인가? 그런데 대개는 배우자와 단 둘이 살던지 아니면 혼자 살기이다. 배우자와 금슬(琴瑟:금실)이 좋다면야 가장 이상적이고 바람직한 노년이 될 수 있다는 것은 당연지사이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노년이 재앙이 되고 지옥 같은 삶이 될 수도 있으니 애당초 시작부터 홀로 살기를 선택하는 것이 지극히 현명한 처사(處事)이다.
노년에 신독한 삶을 위한 준칙(準則)들이 바로 여기 있다. Seven Up(cheer up-명랑하고, shut up-말을 아끼며, show up-모임이나 행사에 빠지지 않고, dress up-옷 잘 입고 다니고, pay up-지갑을 열어 사람노릇 하고, give up-연연(戀戀)해하지 말고 포기할 것은 포기하고, clean up-몸은 깔끔하고 주변은 청결하게)과 Seven Happy(happy look-부드러운 미소, happy talk-칭찬하는 말, happy language:유쾌한 말, happy work-성실한 직무/일, happy song-즐거운 노래, happy note-기록하는 습관, happy mind-감사하고 긍정적인 마인드, 사고)를 지켜가는 것만이 노년에 가장 이상적인 삶이 될 것이다.
끝으로 노년의 ‘건전한 심신(心身)의 원천(源泉)’인 ‘신독’에 가장 위협적인 것 두 가지가 있다. 그중 하나가 고독이다. 인간은 혼자여도, 아니면 둘이 있어도 외로운 법이다. 노년의 고독은, 엄동설한의 바람처럼 차갑고 쓸쓸하며, 늦가을 낙엽처럼 서럽다. 고독이 우울증으로 심화되면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극단적 선택을 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노년에는 고독을 즐기는 법, 나 혼자 노는 법(고독의 품격)을 터득(攄得)해야만 한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노년을 가장 망치게 하는, 노추(老醜:늙어 추함)의 정점(頂點:맨 꼭대기)에 서게 되는 것으로, 경계하고 조심해야 할 것은, 노년에 ‘이성과의 사랑을 찾는 일’이다. 그런데 노년은 사랑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마음의 평온함이다’는 말로, 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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