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世上萬事(37)] 윷놀이냐, 척사냐

김종대(남부권 본부장)
김종대(남부권 본부장)

요즘 내가 사는 평택 마을 곳곳마다 현수막이 많이 걸려 있다. 어떤 곳은 척사대회고 어떤 곳은 윷놀이대회. 바람에 흔들리는 글자들이 서로 다른 이름을 달고 있지만, 결국 사람들을 한곳으로 불러 모으는 건 같다. 모여 웃고, 한 해의 복을 빌고, 이웃의 얼굴을 다시 확인하는 일. 그 하루가 화합의 장이 되길 바라본다.

윷놀이는 원래 그런 자리였다. 정월대보름 무렵, 마을이 편을 갈라(윗말, 아랫말) 윷가락을 던지고 말을 옮기며 한 해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던 공동체 놀이. 누가 이기느냐보다 누가 왔느냐가 먼저였던 시간. 그래서 윷판은 둥글고, 사람도 둥글게 앉는다.

그런데 이름이 둘이다. ‘척사(擲柶)’는 한자로 윷을 던진다는 뜻이다. 국가유산청 설명을 보면 조선 초기에는 윷놀이를 사희(柶戲)’로 부르기도 했고, 조선 중·후기에 척사(擲柶)’라는 용어가 나타나 이후에도 널리 쓰였다고 한다. 말 자체가 틀렸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요즘 귀에는 조금 멀게 들린다. 뜻을 풀어주기 전까지는 무엇을 하는 행사인지 바로 떠올리기 어렵다.

이 간극을 정장선 평택시장이 건드렸다. 그는 자신의 SNS 글에서, 시가 공식 명칭으로 윷놀이대회사용을 권장해 왔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척사대회가 관성처럼 쓰이고 있다고 짚었다. 한자어가 낯선 세대가 늘어난 만큼, 아이부터 어르신까지 누구나 바로 이해할 수 있는 윷놀이로 불러보자고 제안한다. 실제로 평택시가 척사대회대신 윷놀이대회명칭 사용을 권고했었다. 전통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전통이 닿는 말은 쉬워야 한다는 뜻이다.

윷판 위에서 외치는 ! ! ! ! !”에도 사연이 있다. 해설은 여럿이지만, 널리 소개되는 풀이는 이 다섯 이름이 원래 가축 이름에서 왔다는 것이다. 도는 돼지(옛말 ’), 개는 개, 걸은 양, 윷은 소, 모는 말. 이름이 동물의 숨결을 닮았다는 말은, 윷놀이가 농경의 삶과 가까이 붙어 있었음을 떠올리게 한다. 풍요를 빌던 마음이, 말 속에도 남아 있는 셈이다.

그리고 윷놀이장 풍경은 이상하리만큼 늘 비슷하다. 누군가는 고개를 깊이 굽혀 윷판을 내려다보고, 누군가는 막걸리와 소주를 걸치며 불판을 돌본다. 구운 삼겹살을 김치에 싸 먹고, 새우젓에 찍어 먹는 손이 분주하다. 윷놀이 하는 하루는 온통 부산하다. 한쪽에서는 소액이든 뭐든 돈을 걸고 승부를 보기도 한다. 그 순간 잠깐 분위기가 날카로워져도, 결국엔 웃음으로 흘러간다. “에이, 한 판 더!” 이 말이 화해처럼 들릴 때가 있다.

그래서 나는 정답만 고르고 싶지 않다. ‘척사는 오래된 말이고, ‘윷놀이는 살아 있는 말이다. 다만 지금, 우리가 이 전통을 다음 세대에게 넘기고 싶다면설명서가 필요한 말보다, 들리는 순간 그림이 그려지는 말이 더 오래 남는다. 전통의 의미가 끊기지 않게 하려면, 이름은 사람 쪽으로 한 발 다가서야 한다.

오늘도 평택 골목골목마다 현수막은 흔들린다. 척사든 윷놀이든, 그 아래 모인 사람들이 서로의 안부를 묻고 한 해의 복을 나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다만 가능하다면, 아이가 먼저 입에 올릴 수 있는 이름으로. 둥근 윷판처럼, 말도 마음도 둥글어지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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