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속에는 늘 많은 무언가가 산다. 물살을 가르며 오가는 물고기들도 있고, 돌에 붙어 조용히 시간을 버티는 작은 생명도 있다. 그중 하나가 다슬기다. 지역에 따라 올갱이라 부른다. 눈에 잘 띄지는 않지만 맑은 물이 아니면 살 수 없는 고둥이다. 강이 탁해지면 가장 먼저 사라지는 생명. 그래서 올갱이는 강의 숨결을 품고 있다.
다슬기는 쉽게 모습을 내주지 않는다. 껍데기를 깨야 속을 만날 수 있고, 삶아야 비로소 먹을 수 있다. 그래서 다슬기 해장국 한 그릇에는 생각보다 많은 손길이 들어간다. 된장을 풀고, 삶아낸 다슬기 살을 넣고, 시래기와 부추를 더해 오래 끓인다. 화려하지 않지만 구수하고 깊다. 뚝배기 가장자리에서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그 소리만으로도 속이 먼저 반응한다.
어린 시절, 아버지 어머니를 따라 경운기를 타고 여주 강천 남한강 수심 얕은 곳으로 갔다. 물속에 손을 넣어 감각으로 더듬어 잡아올린 다슬기. 된장을 풀고 아욱을 넣어 푹 끓이면 국물은 짙은 녹갈색으로 변했다. 한 숟가락 떠 입안에 넣으면 구수함이 천천히 퍼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맛은 어디서도 만날 수 없는, 돌아가신 어머니의 손맛이었다. 큰 그릇에 담긴 다슬기를 이쑤시개로 하나씩 빼 먹던 여름날의 풍경도 함께 떠오른다.
해장(解酲). 취기를 푼다는 뜻이다. 하지만 올갱이 국은 술기운만 푸는 음식이 아니다. 단백질은 풍부하고 지방은 적다. 타우린 성분이 있어 간 기능 회복에 도움이 된다고 알려져 있다. 따뜻한 국물이 목을 타고 내려가면 속이 서서히 풀린다. 기름기 없이 담백한 국물이 배를 덥히고, 다슬기 특유의 쫄깃한 식감이 씹을수록 고소함을 남긴다. 속이 편안해지면 이상하게도 금세 다시 허기가 돈다. 몸이 먼저 또 한 그릇을 찾는다.
강에서 건져 올린 이 작은 고둥은 내 기억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얼마 전 본 영화 ‘왕사남’에서도 다슬기 국이 등장했다. 영월로 유배 간 조선의 제6대 임금 단종은 마을 사람들이 끓여온 국을 받아드는 장면이었다. 궁궐의 수라상과는 전혀 다른 소박한 한 그릇. 그는 “궁궐의 음식보다 낫다”고 말한다. 낯선 유배지에서 누군가 자신을 위해 끓여온 국물. 그 따뜻함은 음식이 아니라 위로였을 것이다.
남한강 줄기를 따라가다 보면 여주 대신면 천서리 일대에서도 올갱이 해장국집을 만날 수 있다. 강이 가까운 곳에서는 이 작은 고둥이 자연스럽게 밥상이 된다. 뚝배기를 받아들면 된장의 향이 먼저 코끝을 건드리고, 김이 오르는 사이 부추 향이 은근히 따라온다. 국물을 한 숟가락 떠보면 담백함 속에 은근한 단맛이 숨어 있다. 자극적이지 않은데 자꾸만 숟가락이 간다. 비 오는 날이면 더 생각나고, 겨울바람 부는 날이면 더 간절해진다.
조만간 친구들과 남한강에서 잡아 올린 다슬기로 끓인 시원한 올갱이 해장국을 먹어봐야겠다. 간 해독에 좋다니, 핑계 하나쯤은 넉넉하다. 뚝배기에서 김이 오르고, 숟가락으로 다슬기를 건져 한 번 씹는 순간, 강물 냄새와 어린 시절 여름 햇빛이 함께 올라올지도 모른다. 강에서 시작된 작은 생명은 그렇게 밥상이 되고, 기억이 되고, 한 시대의 장면이 된다. 그리고 어느 날 문득, 또 한 그릇이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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