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인성(人性)

사람은 어느 자리에 있든 결국 사람으로 남는다. 직함이 달라지고 권한이 커져도, 인간이라는 조건은 바뀌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오래전부터 인성을 갖춰야 한다고 말해 왔는지도 모른다. 인성은 성격보다 깊고, 태도보다 오래 남는 말이다. 잘 웃고 예의 바른 모습이 아니라, 결정적인 순간에 어떤 선택을 하는가를 가늠하는 기준에 가깝다. 인성의 한자를 들여다보면 뜻은 더욱 또렷해진다. 사람 인(), 성품 성(). ()은 마음 심()에 날 생()이 더해진 글자다. 마음이 태어날 때부터 지닌 결, 쉽게 바뀌지 않는 방향성이다. 그래서 인성은 훈련으로 만들어지는 기술이 아니라, 위기와 권력 앞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성품에 가깝다. 성질과 품격이 함께 어우러진, 한 사람의 됨됨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정치권에서 인성이라는 단어가 다시 등장했다.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고위 공직자 지명자의 과거 보좌진 녹음 파일을 언급하며 인성을 이야기한다. 누가 옳고 그른지를 따지기보다, 이 장면은 우리에게 익숙하면서도 오래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왜 중요한 순간마다 인성을 꺼내 드는가. 그 말속에는 정책이나 법률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불편함이 담겨 있다. 합법이었는지를 넘어, 꼭 그래야 했는지를 묻는 마음이다.

그렇다면 국가의 중요한 결정을 이끄는 정치인이나 고위 관료에게 인성은 무엇이어야 할까. 유능함만으로 충분한가, 아니면 그 유능함을 스스로 제어할 수 있는 절제가 더 중요한가. 사람을 수단으로 삼지 않는 태도, 책임을 미루지 않는 자세, 말하지 않아도 될 때 침묵할 수 있는 감각. 이런 성품들은 권력을 쥐기 전보다, 권력을 쥔 이후에 비로소 시험대에 오른다.

빠르게 돌아가는 시대일수록 우리는 인성을 더 세분화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는 정치만의 문제가 아니다. 조직과 직장, 학교와 가정까지, 각자의 영역에서 인성은 관계의 온도를 결정한다. 인성이 좋다는 말은 결국 함께 있는 사람이 덜 상처받는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불필요한 긴장이 줄고, 말 한마디에 쌓이는 스트레스도 그만큼 줄어든다. 특히 보좌진이나 실무자처럼 늘 아래에서 받쳐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윗사람의 인성이 곧 일터의 공기다. 인성은 거창한 덕목이 아니다. 다만 반복되는 선택의 방향이다. 이길 수 있어도 멈추는가, 말할 수 있어도 참는가, 드러낼 수 있어도 감추는가. 그런 선택들이 쌓여 한 사람의 얼굴이 된다. 우리는 누군가의 발언을 평가하면서도, 사실은 그 말이 나오기까지의 마음을 보고 싶어 하는 건 아닐까.

세상은 점점 빨라지지만, 사람의 마음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더 자주 인성을 묻는다. 어쩌면 인성 논란은 타인을 향한 비난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일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 어떤 마음의 결로 살아가고 있는가. 그리고 그 결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어떤 흔적으로 남고 있는가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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