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 사기는 한순간에 삶의 기반을 무너뜨린다. 계약서 한 장을 믿었을 뿐인데 집은 경매로 넘어가고, 피해자는 짐을 챙길 시간조차 없이 주거 불안을 떠안게 된다. 잘못은 분명 사기범에게 있지만, 그동안 피해의 무게는 개인에게 전가돼 왔다. 전세사기 피해가 사회문제로 떠오른 지 오래지만, 국가의 대응은 충분했다고 보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전세사기 피해주택을 매입해 피해자의 거주를 보장하고, 절차를 간소화한 이른바 ‘패스트트랙’을 시행한 것은 분명한 방향 전환이다. 국토교통부와 한국토지주택공사가 나서 피해주택을 직접 매입하고, 피해자가 최대 10년간 거주할 수 있도록 한 조치는 ‘전세사기 피해는 개인의 책임’이라는 인식을 넘어선다. 최소한 주거 안정만큼은 공공이 책임지겠다는 원칙을 제도로 옮겼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특히 피해자가 보유한 우선매수권을 공공에 양도해 경·공매를 통해 주택을 확보하는 방식은, 경매 과정에서 가장 먼저 주거를 잃게 되는 피해자의 현실을 고려한 대안이다. 매입이 이뤄지면 피해자는 경매차익을 보증금으로 전환해 거주를 이어갈 수 있고, 퇴거 시에도 일정한 보전을 받을 수 있다. 인천과 경기 등 전세사기 피해가 집중된 지역에서 매입 물량이 빠르게 늘고 있다는 점은 이 제도가 현장에서 실제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절차를 간소화한 ‘패스트트랙’ 시행 역시 평가할 만하다. 그동안 행정 절차 지연으로 경매가 먼저 진행돼 피해자가 주거를 잃는 사례가 반복돼 왔던 만큼, 사전협의와 매입요청 절차를 일원화하고 법원과 협의해 경매 진행을 지원하겠다는 방침은 현실적인 보완책이다. 제도의 존재를 인지한 피해자들이 실제로 도움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조치는 선언에 그치지 않는다.
물론 이 제도가 전세사기 문제 전반을 해결해 주는 만능 해법은 아니다. 이미 피해가 발생한 이후의 사후 대책이라는 한계는 분명하고, 모든 피해주택을 매입할 수 없는 구조적 제약도 존재한다. 매입 대상에서 제외되는 피해자들의 상대적 박탈감 역시 남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갑작스러운 퇴거 위협 앞에 놓인 피해자에게 최소한의 주거 안정망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이 제도의 의미는 작지 않다. 이제 중요한 것은 속도와 지속성이다. 제도가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해 도움을 받지 못하는 피해자가 없도록 안내와 상담을 강화해야 하고, 법원·지자체 등 관계 기관과의 협력도 더욱 촘촘해져야 한다. 전세사기는 개인의 판단 착오가 아니라 구조적 범죄다. 그 피해를 최소한으로 복구하는 일은 시혜가 아니라 국가의 책무다.
아울러 매입 속도와 지역 간 편차, 거주 기간 종료 이후의 주거 대책까지 중장기적 점검도 병행돼야 한다. 당장의 ‘퇴거 유예’에 머물지 않고, 피해자의 삶이 다시 안정 궤도에 오를 수 있도록 제도 간 연계와 보완이 뒤따라야 한다. 국가가 나섰다는 상징을 넘어, 끝까지 책임지는 구조로 자리 잡을 때 이 제도는 비로소 신뢰를 얻을 수 있다. 늦었지만 지금의 방향은 옳다. 전세사기 피해주택 매입과 패스트트랙이 단기 처방에 그치지 않고, 전세 제도 전반을 바로 세우는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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