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世上萬事(34)] 설탕

이건구 국장
이건구 국장

설탕은 인간이 가장 좋아하는 것 중 하나다. 배워서가 아니라, 알기도 전에 좋아하게 된다. 단맛은 설명보다 빠르고, 이성보다 먼저 혀에 닿는다. 그래서 설탕은 늘 말리기 어렵다. 건강에 나쁘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그 경고는 언제나 단맛보다 한 박자 늦다. 의사들은 설탕을 줄이라 말한다. 뉴스는 비만과 당뇨를 걱정한다. 그런데 텔레비전을 켜면 풍경은 달라진다. 저녁 뉴스가 끝나자마자 케이크와 초콜릿, 달콤한 음료 광고가 이어진다. 한쪽에서는 절제를 말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유혹이 반복 재생된다. 설탕은 늘 화면 속에서 괜찮다는 얼굴을 하고 있다.

커피도 다르지 않다. 각성을 위해 마신다는 커피는 어느새 설탕 시럽과 만나 가장 인기 있는 음료가 됐다. 이를 두고 악마의 유혹이라 부르지만, 실은 나약함이라기보다 피로의 결과에 가깝다. 오늘을 버티기 위해 선택한 가장 쉬운 타협. 단맛은 죄가 아니라 생활의 기술이 되어 버렸다.

설탕은 처음부터 일상이 아니었다. 고대에는 사탕수수 즙을 끓여 단맛을 농축하고 결정 형태로 만드는 기술이 동아시아와 서아시아로 퍼지며 점차 귀한 물질이 됐다고 알려져 있다. 설탕은 약에 가깝게 쓰이던 때도 있었고, 사치품으로 권력의 상징이던 시절도 있었다. 시간이 흐르며 산업과 유통이 결합했고, 설탕은 마침내 흔한 것이 됐다. 흔해지면, 사회는 그것을 개인의 선택 문제로 돌리기 쉬워진다.

요즘 정치권에서 설탕세가 논란인 이유도 그 지점에 닿아 있다. 국민 건강을 위해 필요하다는 주장과, 결국 부담이 취약한 쪽으로 쏠릴 수 있다는 우려가 맞선다. 실제로 설탕(정확히는 당이 많이 든 음료’)에 세금을 매긴 나라들이 있다. 영국의 경우 단계별 부담금이 제품 개선을 유도해 관련 음료의 설탕 함량이 크게 줄었다는 정부 평가가 나온 바 있다. 멕시코는 2014년 설탕음료세 도입 이후 구매가 감소했다는 연구가 있지만, 정책 효과와 체감 부담을 둘러싼 논의는 여전히 이어진다. 프랑스도 2012년 달콤한 음료에 세금을 도입했으나, 효과가 제한적이었다는 평가가 함께 제기된다.

흥미로운 건 설탕 소비의 현재다. ‘덜 먹자는 말은 점점 커지지만, 세계 전체로 보면 설탕 소비는 당장 줄어든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국제 전망은 인구·소득 증가 등을 이유로 향후 전 세계 설탕 소비가 완만히 증가할 가능성을 제시한다. 일부 국가에서는 1인당 섭취를 줄이려는 흐름이 나타나도, 다른 지역에서는 가공식품과 달콤한 음료 소비가 늘며 총량을 떠받친다. 개인은 줄이려 애쓰는데, 사회의 단맛은 쉽게 가벼워지지 않는다.

설탕을 이렇게 만든 사회가 이제 와서 설탕에 책임을 묻고 있다. 문제는 설탕이 아니다. 우리가 단맛을 어떻게 키워왔는지, 그리고 그 대가를 누구에게 묻고 있는지다. 설탕세는 건강을 위한 장치일 수도, 현실의 계산서일 수도 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설탕은 혀의 문제가 아니라, 생활의 구조다. 구조를 바꾸지 않은 채 가격표만 바꾼다면, 단맛은 줄지 않고 논쟁만 더 달아질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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