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은 여전히 엄동설한이지만 봄을 알리는 절기상 입춘(立春)이 어느새 사흘 앞으로 다가와 있다. 아침 공기는 매섭고, 그늘진 골목에는 겨울이 여전히 눌러앉아 있다. 그런데도 계절은 늘 그렇듯 체감보다 먼저 방향을 바꾼다. 사계절이 뚜렷한 이 땅에서 추운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온다는 순서는 한 번도 어긋난 적이 없다. 절기는 사람의 사정과 상관없이 제 길을 가는듯하다.
봄은 흔히 따뜻해지는 계절로 기억되지만, 실은 움직임으로 시작되는 계절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변화가 먼저 일어나고, 그 뒤에 온도가 따라온다. 꽃이 피어서 봄이 되는 것이 아니라, 봄이 오기 때문에 꽃이 핀다는 말처럼 말이다. 지금 우리가 바라보는 산과 들 어디에도 봄은 이미 오고 있을 것이다. 꽁꽁 얼었던 얼음이 서서히 풀리듯, 땅속에서는 말없이 기운이 방향을 틀고 있다.
우리 조상들은 이 시기를 그냥 넘기지 않았다. 입춘 즈음 씨앗을 고르고 연장을 손질했다고 전해진다. 아직 손이 시릴 만큼 추워도 한 해 농사의 준비는 이때부터였다. 입춘이 지나면 논두렁이 운다는 말처럼, 얼었던 땅이 풀리는 소리를 삶의 신호로 삼았다. 동시에 방심은 경계했다. 입춘 무렵의 꽃샘추위가 오히려 더 독하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봄을 믿되, 마지막 겨울을 얕보지 않는 태도였다.
이맘때쯤이면 전국의 향교와 용인에 있는 한국민속촌에서도 입춘첩 행사가 열린다. 붓을 들고 먹을 갈아 종이에 글귀를 적는 풍경은 단정하다. 겉으로 보면 전통 행사처럼 보이지만, 입춘첩은 본래 구경거리가 아니라 생활의 의식이었다. 그 글귀는 행사장을 떠나 집으로 들어와 대문이나 현관 같은 문턱에 붙여졌다. 기운이 드나드는 자리에서 한 해의 방향을 다시 세우기 위해서였다.
입춘첩에 가장 널리 쓰이는 글귀는 ‘입춘대길 건양다경’이다. 봄이 서는 날 큰 길함이 들고, 밝은 기운을 세워 경사가 많기를 바란다는 뜻이 담겼다. 이 말은 단순한 덕담이 아니다. 복을 마냥 기다리기보다, 밝은 쪽으로 살겠다고 스스로 방향을 정하는 다짐에 가깝다. 그래서 이 글귀는 집 안 깊숙한 곳이 아니라 세상과 맞닿은 경계에 붙였다.
어릴 적 기억 하나가 문득 떠오른다. 지금은 작고하신 엄격하셨던 아버지께서 어느 해 큰 대문에 ‘입춘대길 건양다경’이라 쓴 글귀를 풀칠해 붙이시고, 댑싸리 빗자루로 대문 근방 마당을 깨끗하게 쓸어놓으시던 모습이다. 별다른 말씀은 없으셨지만, 그날만큼은 대문 앞이 유난히 환했다. 그 모습은 지금도 또렷이 내 기억에 남아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은 단순한 청소가 아니라 좋은 기운을 들이기 위한 준비였고, 봄 마중을 기쁜 마음으로 하신 일이었다.
요즘 우리의 삶도 그 대문 앞 어딘가에 서 있는 듯하다. 꽁꽁 얼었던 얼음이 서서히 풀리고 봄이 찾아오듯, 우리 서민경제도 이 어려움이 술술 풀리기를 바라는 마음이 절기와 함께 따라온다. 하루하루의 살림은 여전히 빠듯하지만, 방향만큼은 바뀌기를 기대하게 되는 시기다. 입춘은 곧 다가온다. 봄은 이미 시작됐고 우리는 아직 겨울의 끝자락에 서 있다. 그 짧은 틈에서 무엇을 다짐할지는 결국 각자의 몫이다. 입춘은 봄이 왔다는 선언이 아니다. 얼어 있던 것들이 풀릴 준비를 하라는, 조용하지만 분명한 신호다. 입춘을 맞이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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