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거리를 걷다 보면 겨울철이라 그런지 발보다 마음이 먼저 더러워지는 곳이 있다. 인도 위에는 담배꽁초가 아무렇지 않게 널려 있고, 도로 가장자리에는 누가 버렸는지 모를 쓰레기가 하루 이틀 묵은 표정으로 쌓여 있다. 신호등이 빨간불이어도 차가 없으면 그냥 건너는 사람들이 늘었고, 교차로에서 잠시 멈추는 일조차 번거롭게 여기는 차량들도 적지 않다. 급해서라기보다는, 굳이 지켜야 할 이유를 느끼지 못하는 얼굴들이다 이런 모습들은 단속카메라가 없는 후미진 곳에서 쉽게 목격할 수 있다.
기초질서가 무너졌다고 말하면 다소 거창하게 들릴 수 있다. 하지만 매일 다니는 길, 늘 지나치는 도로를 찬찬히 바라보면 그 말이 과하다고만 하기도 어렵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지켜야 할 것들이 이제는 누가 단속하지 않으면 생략해도 되는 절차처럼 취급된다. ‘나 하나쯤이야’라는 말이 어느새 거리의 기본 언어가 된 느낌이다.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에는 왜 그렇게 쓰레기들이 많은지, 누가 버렸는지 궁급하기도 하다.
문득 예전에 봤던 TV 프로그램 하나가 떠올랐다. ‘이경규가 간다’였다. 이경규씨 일행이 카메라를 들고 거리로 나가 보행자 신호를 지키는 사람을 기다리던 장면이다. 차가 없고 서두를 이유도 없는 상황에서도 끝까지 멈춰 서 있던 사람들. 그는 그들에게 왜 신호를 지켰는지 물었고, 돌아온 대답은 대부분 담담했다. “신호니까요.” 그리고 아무 조건 없이 “잘하셨다”며 작은 선물을 건넸다.
그 장면은 시끄럽지도, 과장되지도 않았다. 누군가를 혼내지도 않았고, 규칙을 지킨 사람을 영웅처럼 치켜세우지도 않았다. 다만 당연해야 할 행동이 더 이상 당연하지 않은 사회라는 사실을 조용히 비춰줬다. 그래서 오래 남았다.
요즘은 그런 질문을 좀처럼 보기 어렵다. 규칙을 지키는 사람은 특별히 주목받지 않고, 규칙을 어기는 행동은 종종 요령이나 개성처럼 소비된다. 단속은 있지만 설명은 부족하고, 벌금은 있지만 왜 지켜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잘 들리지 않는다. 기본은 지켜야 할 가치라기보다 귀찮은 절차로 밀려난 느낌이다. 기초질서는 법 이전의 문제다. 누가 보고 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인가의 문제다. 아이가 옆에 있어서 신호를 지켰다는 말이 더 이상 미담이 되지 않아야 정상이고, 쓰레기를 아무 데나 버리지 않는 일이 칭찬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원래 그래야 하는 일이다.
그래서 요즘 이런 생각이 든다. 다시 그런 프로그램이 하나쯤 있었으면 좋겠다고. 혼내기보다 묻고, 단속보다 보여주며, 어긴 사람보다 지킨 사람을 비추는 방식으로 말이다. 기초질서를 바로 세우는 일은 규정집을 두껍게 만드는 데서 시작되는 게 아니라, 반복해서 보여주는 장면에서 비롯되는지도 모른다. 거리의 질서는 결국 그 사회의 얼굴이다. 담배꽁초 하나, 신호 하나, 쓰레기 하나에 우리가 어떤 공동체인지가 드러난다. 오늘도 길을 지나며 생각한다. 우리는 언제부터 기본을 설명해야 하는 사회가 됐을까. 그리고 그 기본을, 다시 누가 보여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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