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가 다가오면 안부가 부쩍 늘어난다.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역 정치권은 다시 분주해졌다. 광역단체장부터 기초자치단체장, 광역의원과 시의원까지 저마다 선택을 받기 위해 채비에 나섰다. 거리에는 현수막이 하나둘 늘고, 책상 서랍 속에 잠들어 있던 명함이 다시 손에 쥐어진다. 조용하던 휴대전화에도 낯선 변화가 찾아온다.
최근 들어 모르는 번호로 안부를 묻는 문자가 잦아졌다는 이야기를 어렵지 않게 듣는다. 그동안 연락 한 번 없던 이들이 갑자기 건강을 걱정하고, 일상을 궁금해한다. 일간의 대화 속에서는 “반갑다기보다 어색하다”, “왜 이제 와서냐?”는 말이 더 자주 나온다. 지난 4년 가까운 시간 동안 아무 소식 없다가 선거를 앞두고 불쑥 다가오는 연락이 달갑지 않은 건, 누구에게나 비슷한 감정일 것이다.
이들은 왜 선거에 나선다며 갑자기 안부를 묻는 것일까. 과거의 행적이나 공백은 잠시 덮어두고, 다시 얼굴을 내밀어도 선택을 받을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는 것은 아닐까. 한때 정치권에서 회자됐던 말처럼, 시간이 지나면 비판도 잊히고 선거에서는 또 다른 판단이 내려진다는 인식이 여전히 작동하고 있는 건 아닐지 의문이 든다. 정치가 기억보다 망각에 기대고 있는 건 아닌지, 유권자의 마음을 너무 쉽게 계산하고 있는 건 아닌지 되묻게 된다.
최근 이혜훈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 사례는 이런 정치 현실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이후 사생활과 과거 행적이 집중적으로 검증되며 결국 낙마에 이르렀다. 지명 이전에는 문제 삼지 않던 사안들이, 후보자가 된 뒤에야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는 점에서 씁쓸함을 남겼다. 선택의 문턱에 다다라서야 비로소 검증이 시작되는 정치의 구조가 고스란히 드러난 장면이었다.
이런 일이 반복되는 이유를 개인의 도덕성 문제로만 돌리기에는 부족하다. 우리 정치는 여전히 정당 중심, 공천 중심의 구조에 깊이 물들어 있다. 공천이 곧 당락을 좌우하는 구조 속에서, 정치의 출발점은 정책이나 철학이 아니라 줄서기와 내부 관계가 되기 쉽다. 최근 잇따라 불거진 공천 헌금 의혹 같은 사건들 역시 이런 구조가 만들어낸 그림자일 것이다.
더 성숙한 정치라면 어땠을까. 선거를 앞두고 갑자기 늘어나는 안부 문자 대신, 평소의 말과 행동, 지역에서의 책임과 실천이 먼저 평가받는 정치였다면 말이다. 특정 시점에 몰아치는 검증이 아니라, 출발선에 서기 전부터 자연스럽게 걸러지는 시스템이 작동했다면 정치에 대한 실망도 지금보다는 덜했을 것이다.
6·3 지방선거는 또다시 선택의 시간이다. 유권자에게 필요한 것은 갑작스러운 친절이나 익숙한 이름이 아니다. 지난 시간 무엇을 했고, 어떤 태도로 책임을 져왔는지에 대한 분명한 기록이다. 선거가 다가와서야 안부를 묻는 정치가 아니라, 선거가 없을 때도 기억되는 정치. 선택이 반복될수록 정치가 달라진다면, 그 변화는 아마도 이런 질문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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