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25)] 소한(小寒), 작은 추위 큰 말씀

이종훈 국장
이종훈 국장

내일이 절기상 소한이다. 달력에는 작을 소자가 붙어 있다. 말 그대로라면 작은 추위다. 겨울의 한가운데로 막 들어서는 문턱쯤으로 여겨질 법하다. 하지만 이상하다. 해마다 이맘때면 바람은 유난히 날이 서 있고, 공기는 살을 파고든다. 손끝이 먼저 시리고, 귀가 먼저 얼얼해진다. 오늘 낮 나들이에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가, 시린 손끝으로 소한 추위를 먼저 느꼈다. 이름은 작은데 체감은 늘 크다. 그래서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달력보다 말을 먼저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릴 적 이때쯤이면 부모님은 꼭 같은 말을 하셨다. “대한이가 소한이 집에 놀러 왔다가 얼어 죽었다.” 말만 들으면 웃음이 나오는 표현이지만, 그 말은 늘 혼자 끝나지 않았다. 곧바로 따라붙는 한마디가 있었다. “옷 따습게 입고 다녀라.” 그 말의 핵심은 추위가 아니었다. 감기 걸릴까, 몸 상할까 하는 걱정이었다. 부모님은 늘 그렇게 날씨 이야기를 빌려 마음을 전했다. 농담처럼 던졌지만, 그 안에는 늘 단단한 염려가 들어 있었다.

소한은 작은 추위, 대한은 큰 추위다. 한자로 풀어보면 분명한 구분이다. 작고 큼, 앞과 뒤, 시작과 끝이 또렷하다. 하지만 삶은 꼭 글자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작은 고추가 맵고, 소한이 더 춥게 느껴지는 해가 적지 않다. 이름이 작다고 만만한 건 아니고, 크게 불렸다고 늘 더 센 것도 아니다. 겪어본 사람은 안다. 그래서 속담은 늘 경험에서 나온다. 책에서 배운 말이 아니라, 겨울을 건너온 몸이 만든 말이다.

부모님은 달력보다 몸을 믿었다. 절기표를 들여다보지 않아도, 문을 여는 순간 스며드는 찬 기운으로 계절을 읽었다. 그래서 말이 먼저 나왔다. “조심해라.” “챙겨라.” 그 말들은 정보가 아니라 신호였다. 겨울이 왔다는 신호였고, 혼자 두지 않겠다는 약속 같은 말이었다. 우리는 그 신호를 들으며 컸고, 그땐 몰랐지만 그 말들 덕분에 겨울을 무사히 건넜다.

세월이 흐른 지금, 소한은 기온 숫자보다 기억을 먼저 흔든다. 장갑을 찾다 문득 떠오르는 목소리, 외투를 여미며 저절로 떠오르는 옛말. 누군가 옆에서 말해주지 않아도, 몸이 먼저 반응한다. 시간은 흘렀지만 말은 남았다. 작은 추위가 큰 말씀이 되는 순간이다. 작다고 얕잡아보지 말 것, 약해 보여도 방심하지 말 것. 무엇보다 걱정은 늘 웃음 섞인 말로 온다는 것. 그게 부모님의 방식이었고, 우리를 지켜준 방식이었다.

소한이 지나면 보름쯤 뒤 대한이 온다. 이름대로라면 더 큰 추위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겨울의 가장 깊은 곳은 꼭 이름표가 붙은 날에만 오지 않는다는 걸. 때로는 소한 무렵의 바람이 더 매섭고, 그때의 한기가 오래 기억에 남는다. 그래서 오늘도 옷깃을 한 번 더 여민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누가 곁에 없어도. 작은 추위가 가르쳐 준 큰 말씀을 몸이 먼저 기억하기 때문이다. 돌아가신 부모님의 말씀이 이맘때 떠오르는 걸 보니, 계절도 어느새 돌아설 준비를 하고 있는 듯하다. 봄이 멀지 않았다는 신호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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