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 의원의 '보완수사권' 입장변화를 지켜보며

             오기춘 기자
             오기춘 기자

 

정치는 현실이며, 생물이다. 그 현실의 출발점은 늘 국민의 삶이어야 한다. 아무리 숭고한 개혁적 가치와 이념을 담은 정책이라할지라도, 그것이 도리어 국민의 일상에 불편과 고통을 안겨준다면 과감히 수정하고 보완하는 것이 책임 있는 정치인의 자세다. 최근 박지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검찰의 보완수사권 유지를 두고 보여준 입장 변화를 단순한 ‘말 바꾸기’가 아닌, ‘국민적 요구를 대변한 용기 있는 결단’으로 읽어야 하는 이유다.

지난 몇 년간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과 수사권 조정은 거대한 시대적 과제처럼 다뤄졌다. 권력기관 개혁이라는 명분은 화려했고, 당위성 또한 충분해 보였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젖힌 현장의 모습은 전혀 딴판이었다.

가장 큰 부작용은 평범한 서민들이 체감하는 ‘수사 지연’이었다. 사기, 횡령, 민생 범죄 등 하루하루 피가 마르는 고소·고발 사건들이 경찰과 검찰 사이의 ‘핑퐁 수사’ 속에 수개월, 길게는 수년간 계류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던 옛말은 사라지고, 이제는 "억울함을 풀려다 화병이 나서 먼저 죽겠다"는 탄식이 터져 나오는 실정이다. 거대 담론에 갇힌 개혁이 도리어 사법 정의의 공백을 낳고 국민을 고통스럽게만든 셈이다.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은, 건강한 사회적 구조란 어느 한 기관의 독점이나 완전한 단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자연계의 생태계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견제하며 유기적인 선순환의 고리를 형성할 때 비로소 유지되듯, 사법 시스템 역시 마찬가지다. 견제와 균형이 선순환되어야 한다.

경찰과 검찰의 관계를 무조건 분리하고 절단해야 할 적대적 관계로 볼 것이 아니라,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상호 감시하고 보완하는 유기적 협력 구조로 바라봐야 한다. 그리고 시스템의 안정성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하나의 톱니가 어긋나면 생태계 전체가 교란되듯, 수사 구조 역시 서로의 공백을 메워주는 연결 고리가 온전히 작동해야만 국민이 안전하게 보호받는 사회적 구조가 완성된다.

박 의원의 행보는 바로 이러한 유기적 사회 구조의 원리를 정확히 포착한 결과로 볼 수 있다. 한쪽을 완전히 배제하는 극단적 개혁이 아닌, 상호 보완의 사슬을 복원해 시스템의 안정성을 찾으려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구조적인 진단인 것이다. 명분보다 민생을 택한 노련한 현실 감각이 돋보인다.

박 의원은 이념적 도그마(맹신)에 빠져 부작용을 모른척하는 무책임한 정치를 탈피해 '국민의 불편을 해소하는 것이 최우선'이라는 현실론을 과감히 꺼내 들었다. 정치적 비판을감수하더라도 민생의 실질적 이익과 사법 생태계의 복원을 위해 정책적 방향을 선회하는 중진의 무게감을 보여준 셈이다.

민주당의 핵심 가치를 지지하는 이들에게는 그의 유턴이 다소 낯설거나 아쉽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진정한 대변자란 국민이 아파하는 곳을 제때 짚어내고 긁어줄 수 있어야 한다. 제도의 완성도를 높이기 전까지 검찰의 보완 수사 기능을 일부 인정해서라도 유기적 수사 협력망을 복원할 필요가 있다는 그의 지적은, 현재 수사 지연으로 밤잠을 설치는 수많은 피해 국민의 절박한 요구를 그대로 투영하고 있다.

정치인이 과거의 주장에만 얽매여 현실을 외면하는 것만큼 위험한 일은 없다. 진짜 용기는 자신의 오류나 제도의 한계를 인정하고, 민생과 사회 구조의 안정을 위해 언제든 대안을 수정할 수 있는 유연함에서 나온다.

박 의원의 발언은 검찰 개혁의 기치를 꺾자는 것이 아니다. 개혁의 연착륙을 위해 속도를 조절하고, 그 과정에서 단 한 명의 국민도 억울한 피해를 보지 않도록 사법 안전망의 고리를 촘촘히 다잡자는 국민에 대한 충정(衷情)일 것이다.

정치권은 박 의원의 입장 선회를 정쟁의 소재로 삼을 것이 아니라, 사법 현장의 비정상을 정상화하고 끊어진 유기적 구조를 복원하라는 ‘국민적 명령’으로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명분보다 무서운 것은 국민의 안녕이며, 박 의원은 지금 가장 기본적인 정치의 본령을 대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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