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기 전 총리 서리 탄신 100주년 기념 문집을 읽으며

오기춘 기자
오기춘 기자

1987년 6월 항쟁과 6·29 선언은 대한민국 민주화의 상징으로 기억된다. 국민의 희생과 용기, 정치권의 결단이 만들어낸 역사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역사는 때로 결과만 기억될 뿐, 그 과정에서 어떤 고민과 판단이 있었는지 쉽게 알려지지 않는다. 시간이 흐르며 잊히기도 한다.

최근 『기당 이한기 박사 탄신 100주년 기념문집』을 다시 읽으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문집은 새로운 역사를 주장하는 책이 아니다. 오히려 흩어진 기록과 회고를 모아 한 인물의 삶과 공직의 발자취를 복원하려는 사료집에 가깝다. 특히 이 문집에 수록된 소설가 윤영전의 글 「기당의 국무총리 시절」은 1987년 민주화 국면에서 당시 국무총리 서리(1987년 5월 26일~7월 13일)였던 기당 이한기의 역할을 여러 자료를 토대로 정리하고 있다.

주목할 점은 윤영전이 자신의 기억만으로 글을 쓰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는 역사학자 서중석 교수의 연구를 인용했고, 고건 전 내무부 장관의 회고를 함께 소개하며 당시 정부 내부의 상황을 입체적으로 서술했다.

그 글에 따르면, 당시 이한기 국무총리 서리는 명동성당 농성 사태 당시 경찰력 투입에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대화와 자진 해산을 통한 평화적 해결을 모색했다고 한다. 고건 전 장관의 회고 역시 이 총리 서리가 강제 진압에 반대했다는 취지의 내용을 담고 있다. 물론 이는 공식 국가기록이라기보다는 회고와 연구를 토대로 정리된 내용이며, 독자들도 이러한 자료의 성격을 함께 인식할 필요가 있다.

같은 기념문집에는 당시 총리실 의전비서관이었던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회고도 실려 있다. 반 전 총장은 “6·10 항쟁부터 6·29 선언에 이르기까지 기당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다”고 회고하며, 그를 '선비 같은 분'으로 기억했다. 이 역시 역사적 사실을 단정하는 자료라기보다 당시 곁에서 지켜본 인물의 증언으로 읽는 것이 타당하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내용이 담긴 기념문집이 2018년에 발간됐음에도, 기자가 확인한 자료의 범위에서는 이를 중심으로 이 총리 서리의 역할을 본격적으로 조명한 언론 보도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오랫동안 공개돼 있던 자료가 역사의 관심 밖에 머물러 있었던 셈이다.

민주화는 결코 한 사람의 업적으로 설명될 수 없다. 거리에서 민주화를 외친 국민들이 있었고, 종교계와 정치권의 역할도 있었으며, 정부 내부에서도 서로 다른 판단과 고민이 존재했다. 어느 한 축만으로 역사를 설명하면 다른 축은 자연스럽게 가려질 수밖에 없다.

언론의 역할은 새로운 영웅을 만드는 데 있지 않다. 이미 존재하는 사료를 다시 살펴보고, 그동안 충분히 조명받지 못했던 기록을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데 있다.

『기당 이한기 박사 탄신 100주년 기념문집』에 수록된 윤영전의 「기당의 국무총리 시절」은 그런 의미를 지닌다. 이 글은 이 총리 서리를 민주화의 주역으로 단정하려는 것이 아니라, 당시 정부 내부에서 물리적 충돌을 막고 제도적 해법을 고민했던 한 공직자의 모습을 여러 연구와 회고를 통해 복원하려는 기록이다.

역사는 결과를 기록한다. 그러나 역사를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결과에 이르기까지의 과정 또한 함께 읽어야 한다. 때로는 오랫동안 잊혀 있던 기록 한 권이 우리가 알고 있던 역사를 더욱 풍성하게 바라보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댓글 0

댓글이 없습니다.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