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신문=순정우 기자] [편집자주] 사람이 몰리면 상권은 살아난다. 그러나 그 끝이 늘 밝지만은 않다. 임대료가 오르고, 오랫동안 자리를 지켜온 상인들이 하나둘 밀려난다. 상권이 성장할수록 오히려 원래 있던 사람들이 떠나는 아이러니. 수원시는 이 흐름을 멈추기 위해 ‘지역상권 보호도시’를 선언했다. 상권을 키우는 데서 그치지 않고, 지키는 단계로 나아가겠다는 시도다.
# 살아난 골목, 그러나 남는 사람은 없다
낡은 골목에 카페와 가게가 들어서고,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한다. SNS에 이름이 오르내리며 ‘핫플레이스’가 된다. 상권이 살아나는 전형적인 모습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또 다른 장면이 펼쳐진다. 임대료가 오르고, 처음 그 자리를 지키던 상인들이 버티지 못하고 떠난다. 결국 상권의 얼굴이 바뀌고, 분위기도 달라진다.
이 같은 현상을 ‘젠트리피케이션’이라고 부른다. 쉽게 말해 상권이 좋아질수록 기존 상인과 주민이 밀려나는 구조다. 주거지뿐 아니라 상업지역에서도 반복되는 문제다.
수원시는 이 지점을 문제의 출발점으로 봤다.
# 행리단길, 변화의 시험대에 서다
수원 행궁동 일대, 이른바 ‘행리단길’은 최근 가장 빠르게 성장한 상권 중 하나다. 방문객이 늘면서 상권은 활기를 띠었지만, 동시에 임대료 상승과 상인 교체에 대한 우려도 커졌다.
수원시는 이 흐름을 방치하지 않았다. 행리단길 일대를 전국 최초로 ‘지역상생구역’으로 지정했다.
상생구역 지정은 단순한 지원 정책과는 결이 다르다. 상권을 보호하기 위한 규칙과 지원이 함께 적용된다. 임대료 인상률은 5%로 제한되고, 업종 제한 등 상권 관리 기준도 적용된다. 여기에 건물 개보수 비용 지원과 세금·부담금 감면 등 지원책이 더해진다.
상권이 성장하더라도 기존 구성원이 함께 남을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한 셈이다. 수원시는 이곳을 젠트리피케이션 대응의 모델로 키운다는 계획이다.
# ‘활성화’에서 ‘보호’로 정책 방향 전환
이 같은 시도는 특정 지역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수원시는 2024년 5월 ‘지역상권 보호도시’를 공식 선언하며 정책 방향 자체를 바꿨다. 그동안의 상권 정책이 ‘활성화’에 초점이 맞춰졌다면, 이제는 보호와 균형까지 함께 고려하겠다는 것이다.
수원시는 성장·상생·지원이라는 세 축 아래 5대 중점 과제와 60개 세부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대부분 사업이 완료됐거나 진행 중이다.
# 골목상권, 제도 안으로 들어오다
이 정책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골목상권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수원시는 골목형상점가 지정을 확대하며 상권을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2026년 1월 기준 22개소, 2544개 점포가 지정됐다. 골목형상점가로 지정되면 온누리상품권 사용이 가능해지고, 공모사업 참여 자격도 주어진다. 지역화폐 가맹 기준도 완화된다.
그동안 상대적으로 지원에서 소외됐던 골목상권을 정책 안으로 편입시키는 구조다.
# 소비는 키우고, 경쟁은 조절한다
수원시는 소비 촉진과 상권 보호를 동시에 추진하는 방식도 택했다.
‘새빛세일페스타’는 소상공인과 대형 점포가 함께 참여하는 소비 행사로 자리 잡았다. 참여 점포 절반 이상이 매출 증가 효과를 체감했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반면 대형 유통시설 확장은 제한하고 있다. 2025년부터 시행된 ‘유통시설총량제’는 대형마트와 백화점의 신규 입점을 일정 기간 제한하는 제도다. 과도한 경쟁을 줄이고, 기존 상권이 버틸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는 취지다.
# 지원을 넘어 ‘구조’를 바꾸다
수원시 정책은 단순 지원을 넘어서고 있다. 상권활성화센터를 통해 상권 분석과 소상공인 지원을 진행하고, 창업과 재기 지원, 로컬브랜드 육성까지 이어진다.
상권을 개별 점포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의 생태계로 보고 관리하는 접근이다.
# 상권은 함께 남을 수 있을까
상권은 늘 변한다. 그러나 그 변화가 누군가의 퇴장을 전제로 할 필요는 없다. 수원시는 상권이 커질수록 기존 구성원도 함께 남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들겠다는 실험을 시작했다. 젠트리피케이션을 피할 수 없는 흐름이 아니라, 관리할 수 있는 문제로 본 것이다.
시 관계자는 “지역상권 구성원 모두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도시를 만들기 위해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상권을 키우는 도시에서, 상권을 지키는 도시로—수원의 방향이 바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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