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를 몇 달 앞둔 어느 날의 풍경이다.
정장 차림의 인물은 허리를 깊이 숙인 채 시민의 손을 붙잡고 있다. 얼굴엔 웃음이 가득하지만, 이마에서는 땀이 쏟아진다. 악수하는 손보다 더 눈에 띄는 것은 반대편 팔에 안긴 수많은 깃발들이다. 깃발은 제각각 색도 다르고 모양도 다르다. 하나하나가 ‘약속’이다. 이것도 해주고, 저것도 해주고, 저것까지도 해주겠다는 다짐의 묶음이다.
하지만 그 약속들은 깔끔하게 서 있지 못한다. 일부는 손에서 흘러내려 바닥에 떨어져 있다. 밟히고, 구겨지고, 먼지를 뒤집어쓴 채 방치된 깃발들. 약속이 너무 많아 오히려 감당되지 않는 모습이다. 말이 많아질수록 신뢰는 가벼워진다는 사실을 이 장면은 조용히 보여준다.
시민들의 표정은 제각각이다.
누군가는 무표정으로 바라보고, 누군가는 팔짱을 낀 채 한 발 물러서 있다. 선거철에 반복돼 온 장면을 이미 여러 번 겪어본 얼굴들이다. 악수는 받지만, 고개는 끄덕이지 않는다. 믿음보다 피로가 먼저 쌓인 표정이다.
뒤편에는 굴착기와 공사 현장이 보인다. 아직 시작되지 않은 미래의 약속처럼 멈춰 서 있다. 그리고 그 위로 달력이 걸려 있다. 여러 날이 이미 지워졌고, 특정 날짜만 유독 강조돼 있다. 선거일이다. 이 모든 행동이 시민을 향한 진심인지, 그 날짜를 향한 조급함인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읽힌다.
이 만평은 묻는다.
정말로 지금에서야 다 할 수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그동안은 굳이 하지 않아도 됐던 것일까.
선거가 가까워질수록 정치인은 친절해지고, 약속은 많아진다. 그러나 시민들은 안다. 약속의 양이 아니라, 시간의 태도가 진심을 말해준다는 것을. 이 그림 속 인물은 시민을 바라보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다시 한 번 선택받는 순간만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그래서 이 장면은 웃기지만, 웃고 넘기기엔 씁쓸하다.
선거철마다 반복되는 이 코미디가, 너무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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